종료 휘슬이 울렸다. 3-2 승리. 다음 대회 본선 진출권은 획득했다. 51년 만의 우승 도전에는 실패했지만 유종의 미를 거뒀다. 승리의 기쁨에 취할 법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듯한 표정이었다. 마음이 무거워 보였다. 함께 뛸 수 있는 마지막 경기였기에.
한국 축구대표팀과 우즈베키스탄의 아시안컵 3, 4위전이 열린 29일 카타르 도하 알사드 경기장. 경기가 끝난 뒤 대표팀 막내 손흥민(함부르크)이 이영표(알힐랄)에게 다가갔다. 목말을 태우고 그라운드를 돌았다. 선수들도 약속이나 한 듯 이영표를 헹가래 쳤다. 무릎 상태가 좋지 않아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본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헹가래를 받았다. 사실 이날 경기는 이영표에게 대표팀의 마지막, 박지성에게는 마지막이 될 수 있는 경기였다.
박지성과 이영표가 없는 한국 축구를 상상할 수 있을까. 1980년대에 차범근-최순호, 1990년대에 황선홍-홍명보가 있었다면 2000년대에는 박지성-이영표가 있었다. 이영표는 1999년 6월 멕시코전, 박지성은 2000년 라오스전을 통해 A매치에 데뷔했다. 이날 3, 4위전까지 이영표는 A매치 126경기, 박지성은 100경기를 뛰었다. 각각 한국 선수로서 3번째, 8번째로 많은 경기 출장 수다.
이들은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 등 한국 축구의 역사를 함께 썼다. 꿈의 무대인 유럽 프로축구 무대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2000년대에 박지성과 이영표는 한국 축구의 아이콘이자 그 자체였다. 이들의 대표팀 은퇴 소식을 국제축구연맹(FIFA)과 해외 언론들이 크게 다루었을 정도다.
이제 두 영웅은 아시안컵을 통해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떠난다. 박지성은 31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대표팀 은퇴 관련 기자회견을 갖는다. 조금 더 붙잡고 싶은 간절한 마음과 함께 아쉬움이 크다. 팬들은 이들을 향해 아마 이 말을 하고 싶을지 모른다.
“그동안 그대들이 있어 고마웠고 행복했습니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차두리의 떠나보내는 마음▼
지성이에게…
너와 뛸땐 항상 든든했다, 아시아의 자존심!
지성아! 정말 대표팀을 그만두는 거니? 아직도 믿어지질 않는다. 너를 보면서 항상 ‘멋지다’고 생각했어. 키가 크지도, 그렇게 빠르지도 않은데 너는 언제나 경기장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줬지. 너를 보면 남아공 월드컵 그리스전이 생각난다. 그 경기에서 왜 박지성이 멋진지를 알게 됐지. 너와 함께 경기를 하다 보면 마음이 편해진다. 경기가 안 풀릴 때도 ‘우리에겐 지성이가 있다’라고 생각했어. 누가 뭐래도 너는 아시아의 자존심이야. 그동안 체력적으로 힘든 점이 많았을 텐데 매 경기 최선을 다해 줘 고맙다. 앞으로도 부상 없이 아시아의 자존심을 지켜주길 바란다.
영표형에게…
대표팀서 볼수없다니 슬퍼집니다, 레전드!
사랑하는 영표 형! 그동안 정말 수고 많았어요. 형과 함께 그라운드를 누비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경기장 안에서뿐 아니라 밖에서도 항상 모범이 됐기에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형이 많이 그리울 것 같아요. 한편으로 이젠 대표팀에 형이 없다는 생각을 하니 기분이 묘해집니다. 마음이 텅 비고 슬퍼져요. 영표 형. 형에게 ‘레전드(전설)’라고 장난처럼 말했지만 그건 진심이에요. 형은 진정 한국 축구의 전설 중 한 명입니다. 저는 형과 함께 웃고 땀 흘릴 수 있었던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영표 형! 항상 건강하세요. 그리고 고마워요. 형이 그리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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