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릭스 박찬호(38)은 8일 미야코지마 시민구장 기자실에 불쑥 들어오더니 창밖에다 고함을 질렀다. 밖에는 이승엽(35)이 창문 쪽을 마주보고 서서 통역 정창용 씨가 올려주는 볼을 받아치는 토스배팅을 하고 있었다. 타구 몇 개가 빗맞자 박찬호가 이승엽을 놀렸던 것. 박찬호는 전날 불펜피칭을 소화해 이날은 점심시간 무렵 훈련이 일찍 끝났다. 그래서인지 어린 아이처럼 빨대로 음료수를 빨아 마시며 이승엽에게 장난을 걸고 있었다.
박찬호의 시비(?)에 이승엽은 배트를 계속 돌리면서도 “연습 방해 하지 말라니까∼”라며 맞받아쳤다. 눈을 부릅뜨며 치는 타구는 마치 그물을 뚫고 박찬호를 가격해버릴 기세. 박찬호는 ‘괜히 잘못 건드렸다’는 표정으로 기자실 밖으로 줄행랑을 쳤다. 이승엽은 잠시 배팅을 멈춘 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데 사라진 줄 알았던 박찬호는 갑자기 덕아웃을 통해 그라운드로 나갔다. LA 다저스의 아시아담당 이사인 A C 고로키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고로키는 박찬호는 물론 노모 히데오를 다저스로 영입한 주인공이다.
이승엽은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배팅케이지 쪽에 있는 박찬호를 보고 “찬호형!”이라고 불렀다. 몇 번이나 “찬호형”이라고 불러도 대답하지 않자 “찬호!”, “찬!”이라며 호칭이 짧아지더니, 기어이 “찹!”이라고 불렀다. ‘찹(CHop)’은 박찬호의 영어이름 ‘Chan Ho Park’의 알파벳을 줄인 것. ‘Chop’은 ‘자르다’는 뜻을 갖고 있다. 필라델피아 시절 불펜투수로 나서 위기상황을 잘 자르자 박찬호에게 붙여진 별명이자 애칭이다.
이승엽이 계속 “찹찹”거리자 그제야 고개를 돌린 박찬호. 이승엽의 말이 떨어지기 전에 “넌 10년 전 타격 하냐?”며 공격을 퍼부었다. 박찬호의 선제타에 이승엽도 웃고 말았다. 둘은 예전부터 친분을 쌓아왔지만 오릭스에서 한솥밥을 먹으면서 더욱 절친해졌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사우나까지 같이 하는 사이가 되면서 허물도 없어졌다. 힘든 스프링캠프 훈련 속에서도 서로의 웃음이 돼 주는 선후배. 티격태격하는 말다툼이 오히려 더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미야코지마(일본 오키나와현) |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사진 |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