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시작 전 최 감독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최 감독은 취재진에게 양해를 구하고 감독실에서 혼자 머물렀다. 평소 기자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다 경기에 임하던 그는 조용히 마지막 경기를 준비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강원 선수들은 경기 전 따로 미팅을 갖고 최 감독의 고별전을 반드시 승리로 장식하자고 다짐했다.
갑작스럽게 사퇴를 결정한터라 선수들이 최 감독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은 승리밖에 없었다. 주장 정경호는 “특히 (김)영후가 골 넣는 게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영후의 득점 찬스를 좀 더 신경써주면서 경기하자”고 주문하기도 했다.
김영후는 내셔널리그 시절부터 최 감독과 함께한 애제자. 현대미포조선 시절부터 호흡을 맞춰온 김영후는 최 감독을 따라 K리그로 왔다. 그리고 최 감독 아래서 K리그에 데뷔해 내셔널리그 득점왕 출신답게 매년 많은 골을 양산했다. 2009년 K리그 신인왕까지 거머쥐었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선수들은 최 감독에게 가장 좋은 선물은 김영후의 골이라고 생각했다.
경기 시작과 함께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낸 최 감독. 평소 선수들이 입장할 때 뒤를 이어 들어서지만 이날은 경기 시작할 때쯤 벤치로 나왔다.
구단 관계자는 “감독님이 경기장 한쪽 벽을 기대고 서서 한참을 생각하다 들어갔다”고 전했다. 경기 시작 직전에는 선수들과 벤치 앞에서 고별전 기념촬영을 한 뒤 자리에 앉았다.
이날 열린 전남과의 경기에서 김영후는 선발 출전했다. 최 감독의 직접적인 사퇴 원인이 된 강원의 골 가뭄. 주전 공격수 김영후는 책임을 통감한 듯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는 떠나는 스승을 위해 그라운드에서 혼신의 힘을 쏟아냈다. 상대 수비수와 헤딩 경합을 벌이다가 머리끼리 부딪혔지만 곧바로 일어나는 등 투지를 보였다. 2번의 결정적인 득점찬스가 상대 골키퍼 이운재의 선방에 막혔다. 다른 선수들의 슈팅도 마찬가지였다. 수비수 다리에 볼이 튕기고, 이운재의 손에 걸리는 등 불운이 잇따랐다.
결국 경기는 0-0 무승부로 막을 내렸다. 선수들은 고별전에서도 골을 넣지 못한 미안함에 고개를 숙였다. 약속했던 골 세리머니도 펼치지 못했다. 그 순간 경기장에는 유명 팝송 ‘마이 웨이’와 함께 최 감독의 고별 영상이 흐르고 있었고, 최 감독은 선수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