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인지 창고인지 구분이 안됐다. 벽과 방구석엔 여기저기 때가 묻었다. 웨이트트레이닝 장소의 거울은 깨져 있었다. 감독은 허름한 방 안에 아파 누워 있었다. 약봉지가 여럿 눈에 띄었다. 그곳에서 올해 40세가 된 나이 많은 골키퍼는 타박상 치료를 받고 있었다. 파스 냄새가 났다. 모 건설회사 건물을 빌려 쓰고 있는 충남 공주시 반포면 국곡리 대전 시티즌 숙소. 골키퍼는 여기서 먹고 잔다.
한 팀에서 가장 오래 뛰고 있는 독특한 기록의 소유자 최은성. 1997년 시민구단 대전 창단 멤버로 참가해 14년째 총 442경기를 뛰었다. 그는 3일 강원과 경기에서 수비수와 부딪쳐 경기 중 실려 나왔고 16일 공격축구를 앞세운 상주와의 경기에선 온몸으로 슈팅을 막아내는 육탄 수비를 펼쳐 팬들로부터 ‘수호천황’이란 찬사를 들었다. 대전은 3위로 내려앉기는 했지만 최근 10년 만에 정규리그 선두에 오르는가 하면 3승 3무로 무패 행진을 하고 있다. 대전의 최근 돌풍은 최은성의 활약에 힘입은 바 크다.
몸을 사리지 않지만 그는 누구보다 부상의 공포를 잘 알고 있다. 10년 전 그는 그라운드에서 의식을 잃었다.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잠이 오는 걸 느꼈다. 함성도 들리지 않고 고통도 없고 너무 편했다. 잠들면 세상 그 누구보다 편하리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죽음의 유혹이었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퍼뜩 가족 생각이 났다. ‘아 이렇게 사라지면 안 되는데….’ 그는 편하고 싶다는 생각을 물리쳤다. 의식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그렇게 죽음의 문턱에서 걸어 나왔다. 프로야구 경기 도중 쓰러져 의식을 잃었던 고 임수혁처럼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2001년 11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전과 포항의 FA컵 결승전은 그가 가장 생각하기 싫어하는 경기다. 그는 상대 선수와 부딪쳐 광대뼈가 함몰됐다. 팀은 1-0으로 이겨 우승했지만 그는 병원에 실려 가야 했다. 대전이 창단 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우승했던 대회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썼던 거스 히딩크 감독의 눈에 들어 당시 대표팀에도 승선했지만 이 부상으로 제대로 뛰지 못했다. 그렇게 서서히 잊혀져 갔다.
10년 후 대전은 강팀들에 맞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는 “지난해 13위를 한 데다 일부 선수가 나가 팀이 위기에 처했다. 어려우니까 선수들이 더 뭉치는 거 같다”고 했다. 뚜렷한 스타도 없이 팀이 돌풍을 일으키자 그의 감회도 새롭다. “2002년경 후원금이 모두 끊겨 팀이 해체될 뻔하기도 했는데….” 그는 “모처럼 올라온 상위권에서 내려가고 싶지 않다”며 웃었다.
그라고 해서 왜 대전이 마냥 좋았겠는가. 그는 “나도 인간인데 때로는 더 좋은 팀에서 뛰고 싶었다. 하지만 나를 처음 받아준 곳이고 나를 버리지 않은 곳이다”라며 애정을 표시했다. 그는 중국과 브라질 등 해외 전지훈련을 갈 때마다 왼쪽 어깨에 대전 엠블럼 등을 새겼다. 이제 어깨가 문신으로 가득하다. 기나긴 무명의 세월이었지만 대전과 함께한 그의 열정은 여전히 활활 타오르고 있다.
대전=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 최은성
△생년월일=1971년 4월 5일 △체격=184cm, 82kg △출신교=포항제철중, 강동고, 인천대 △1997년 대전 시티즌 창단 멤버 △442경기 553실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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