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의 세계선수권 정상 탈환에 실패했지만, 김연아(21)는 여전했다. 일본의 안도 미키나 아사다 마오보다 한 수 위의 기량을 뽐냈다. 하지만 받아 든 성적표 자체는 예년에 훨씬 못 미쳤다. 김연아는 왜 한 수 아래로 평가됐던 안도에게 1위 자리를 내준 걸까.
● 13개월 간의 실전 공백
김연아는 지난해 3월 토리노 세계선수권 이후 13개월 만에 실전에 나섰다. 전문가들은 “별다른 적수가 나타나지 않았다. 여전히 김연아의 우승이 유력하다”고 전망했지만, 1년여 만에 국제대회의 팽팽한 긴장감을 겪게 된 여파가 전혀 없을 수는 없다.
김연아는 쇼트프로그램에서 한 번, 프리스케이팅에서 두 번 실수를 했다. 특히 쇼트에서는 전매특허인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를 성공하지 못했다.
경기 후 스스로 “훈련 때 단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다. 나도 이유를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웃거렸을 정도다. 프리에서도 트리플 살코에 연결되는 더블 토루프를 싱글로 처리했다. 이 때 다리에 힘이 풀린 탓에 트리플 플립도 한 바퀴밖에 돌지 못했다.
김연아는 “오랜만의 실전이라 조금 긴장하긴 했다. 공백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했다.
● 프로그램 첫 공개의 불리함
피겨계는 심판들이 김연아의 새 프로그램을 처음으로 봤다는 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쳤다고 해석하고 있다. 심판들은 훈련 참관 없이 선수들의 경기만 보고 채점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새 프로그램의 첫 연기를 기준점으로 삼는다.
우승자인 안도는 풀 시즌을 소화하면서 꾸준히 프로그램을 다듬어 나갔고, 무난하게 프리스케이팅 연기를 마친 덕분에 이전보다 더 나은 인상을 심어 주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김연아는 표본이 없는 상태에서 경기에 나섰다. 한 피겨 관계자는 “심판들이 첫 경기에 대해서는 다소 점수를 짜게 주는 경향이 있다”고 귀띔했다.
기술 요소마다 가산점을 쓸어 담곤 했던 김연아가 이번 대회에서 별다른 추가 점수를 받지 못한 이유와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트리플 점프 직후 싯스핀을 연결하는 등 다양한 가산 요인을 포함시켰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의외다.
● 시상대 위 눈물의 의미는?
김연아는 경기 직후 “내용에는 만족한다. 어차피 금메달만 바라고 대회에 참가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지만, 시상대에 올라 결국 눈물을 흘렸다. 2009세계선수권과 2010밴쿠버올림픽에서 가장 바라던 두 개의 금메달을 목에 건 후에야 눈물을 보였던 김연아다. 그러니 이전과 성격이 다른 세 번째 눈물에 관심이 모아질 수밖에 없다.
김연아는 “나도 왜 울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힘든 시간을 거치고 그 곳에 오랜만에 섰다는 느낌이 나를 울게 만든 것 같다”고 털어놨다. 늘 당당하고자 했던 피겨 여왕의 마음 고생을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