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는 아무리 잘 던져도 타선의 지원이 없으면 승리를 만들어낼 수 없다. 삼성 배영수는 2004년 현대와의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10이닝 무안타 무실점 호투를 하고도 노히트노런은커녕 승리투수조차 되지 못했다.
KIA 로페즈는 지난 시즌 대표적인 악동이었다. 2009년 14승(5패)으로 공동 다승왕에 올랐던 그는 지난해 4승(10패)에 그쳤다. 성적도 추락했지만 더그아웃에서 의자를 집어던지는 등 돌출행동으로 구단의 징계를 받았다. 비난받을 행동이었지만 로페즈로서는 속이 터질 만도 했다. 26경기에 선발 등판해 퀄리티 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 이하)를 12차례나 한 그에게 4승이 성에 찰 리 없었다. 그가 등판할 때면 침묵하는 타선이 문제였다.
공식 기록은 아니지만 선발투수가 마운드에 서 있는 동안 팀 타선이 뽑아준 점수를 9이닝으로 환산한 수치를 득점 지원(Run Support·RS)이라고 한다. 지난해 로페즈가 선발 등판했을 때 RS는 3.49로 규정 이닝을 채운 투수 15명 가운데 가장 낮았다. 지난해 로페즈의 평균자책은 4.66. 얼핏 두 수치를 비교해 봐도 승수보다 패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올 시즌 로페즈는 달라졌다. 팀과 재계약하면서 돌출행동 금지를 약속하기도 했지만 타선이 적극적으로 도와준 덕분에 아직까지는 아쉬울 게 없다. 2일 현재 그의 RS는 6.30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2배 가까이 높아졌다. 로페즈는 올 시즌 승리할 때마다 “타자들을 믿고 편하게 던졌다”고 말한다. 타선의 든든한 지원 덕에 자신도 최고의 투구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LG의 새 에이스로 떠오른 박현준은 더 극적이다. 그가 마운드에 설 때 팀 타선은 9이닝당 8.80점을 뽑아줬다. 웬만해선 지기 어렵다.
반면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 박찬호는 불운하다. 3경기 모두 퀄리티 스타트를 하며 평균자책 2.49로 잘 던졌지만 1승(2패)만 거뒀을 뿐이다. RS가 2.08에 불과한 때문이다. 한화 류현진(2승 4패)도 마찬가지다. 그가 등판할 때 팀 타선은 고작 9이닝 기준 2.61점을 얻어줬다. 박찬호와 류현진은 최근 팀 타선의 부진으로 각각 3실점, 2실점으로 잘 던지고도 타선의 침묵으로 완투패를 당하기도 했다. 삼성에서 넥센으로 팀을 옮긴 나이트(1승 3패)는 평균자책 2.27로 이 부문 4위지만 그가 등판한 5경기에서 팀 타선은 고작 6점을 얻었다. RS가 1.71로 리그에서 가장 낮다. 웬만해서는 이기기 어렵다. 방망이는 믿을 수 없다고 하지만 ‘복불복’ 타선에 투수들은 울고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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