윔블던 달구는 괴성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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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23일 21시 01분


농구 장내 아나운서로 유명했던 염철호 씨(76)가 마이크 앞에서 자주 하던 얘기가 있다. "체육관은 교실이 아닙니다. 마음껏 소리를 지르세요." 함성을 통한 스트레스 해소는 스포츠 관전의 묘미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테니스 코트는 다르다. 선수들의 랠리 도중에 관중석은 쥐죽은 듯 조용하며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선수들이 코트를 바꿀 때만 이동이 가능하다.

빅토리아 아자렌카
빅토리아 아자렌카
그렇다고 테니스 선수들까지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할까. 이번 주 개막한 제125회 윔블던 에서 괴성녀 논란이 재연됐다. 주인공은 여자 단식 3번 시드 빅토리아 아자렌카(벨라루스)였다. 1회전에서 아자렌카가 공을 칠 때 낸 소리의 소음은 95dB(데시벨)에 이른 것으로 측정됐다. 현지 언론은 그의 괴성이 저음으로 시작해 한 옥타브 정도를 올라간 뒤 흐느끼며 마무리됐다고 묘사했다. 소형 항공기가 이착륙할 때 소음이 100dB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귀마개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대회를 주관하는 올 잉글랜드 클럽의 이언 리치 전무는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괴성을 줄이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지나치게 소리를 지르면 상대 선수에게 방해가 될 수 있다. 심판에게 항의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코트의 철녀'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는 "심하게 소리를 지르는 선수들에게 경고나 벌점 같은 불이익을 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세리나 윌리엄스(왼쪽), 마리야 샤라포바.
세리나 윌리엄스(왼쪽), 마리야 샤라포바.
코트의 괴성녀로는 원조로 꼽히는 모니카 셀레스를 비롯해 '비명의 여왕'으로 불리는 마리야 샤라포바, 비너스 세리나 윌리엄스 자매, 엘레나 데멘티에바 등이 대표적이다. 포르투갈의 미셸 라셰르데 브리토는 2009년 윔블던에서 사자 포효 소리(110dB)에 육박하는 109dB의 소음을 기록했다.

괴성은 어떤 효과가 있을까. 영국 브루넬대의 앨리슨 매코넬 교수는 "테니스 칠 때 괴성은 호흡과 관련이 있다. 임팩트에 앞서 숨을 들이마신 뒤 내뱉는 과정에서 에너지를 극대화시키면서 나오게 된다. 심리적 안정을 주며 파워 증대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팬들은 신음에 가까운 소리에 묘한 매력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셀레스는 1992년 윔블던 결승에서 슈테피 그라프와 맞붙어 패했는데 괴성을 지르는 데 제약을 받았던 걸 패인으로 꼽기도 했다.

윔블던에서 이런 논쟁이 되풀이되는 건 오랜 역사 속에서 여전히 흰색 운동복만을 고집하고 영국 왕실에 대한 예의를 주문하는 등 유달리 매너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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