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153cm… 돌같이 거친 손… 강철같은 근육…
오르는 건 내 운명 오늘도 내일도 오른다
서울 강북구의 한 인공 암벽등반장에서 훈련에 열중하고 있는 김자인. 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티 없이 맑은 낯에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는 그녀. 새침데기 소녀처럼 보인다. 그가 흰 초크가 잔뜩 묻은 자그마한 손을 내밀었다. 손끝이 거친 돌 같다. 몇 번이나 부러지고 깨졌던 손가락에는 테이프가 감겨 있었다. ‘스파이더 걸’로 불리는 김자인(23·고려대)은 지난해 스포츠 클라이밍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다. 올해 4월에는 클라이밍 양대 종목인 리드와 볼더링을 모두 제패한 첫 아시아인이 됐다. 6월에는 스포츠 클라이밍에서 가장 권위 있다는 ‘아르코 록 레전드 상’ 후보로 선정됐다. 한국인으로는 최초다.》 스포츠 클라이밍에는 3개 종목이 있다. 리드는 안전 줄을 메고 4∼6개의 인공 암벽 루트를 제한된 시간에 더 많이 올라야 하는 경기다. 볼더링은 안전 장비 없이 5m 이내의 인공 암벽에서 주어진 과제를 빨리 해결해야 하는 종목. 스피드는 안전 줄을 메고 규격화된 암벽 루트를 누가 더 빨리 오르는가로 승부를 낸다.
세계 정상에 올랐지만 그는 아직 더 올라가야 한다고 말한다. ‘작은 거인’ 김자인을 28일 만났다.
단단한 조약돌 같았다. 어깨와 팔은 마치 조각이라도 해놓은 듯 다부진 근육이 자리하고 있었다. 키 152cm가 맞느냐는 기자의 말에 “정확히 153cm예요! 2009년에 1cm 컸다고요”라며 눈을 크게 뜨고 고쳐준다.
여성으로 한창 예쁘게만 보이고 싶을 나이에 격렬한 운동을 하다 보니 키가 크지 않았다. 남자처럼 근육이 발달했고 하이힐이 아니라 암벽화를 신다 보니 굳은살은 없어질 생각을 않는다. “사춘기 때는 주위 사람들이 여자 같지 않다고 놀릴 때마다 울었어요. 이제 안 그래요. 클라이머다운 자연스러운 내 몸이 좋아요.”
그는 태어나기 전부터 산에 올랐다. 부모님은 산악회 활동을 통해 처음 만났고 김자인의 오빠 둘도 스포츠 클라이밍 선수다. 그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오빠들이 북한산 인수봉을 오르는 걸 지켜봤죠. 제 이름이 등반에 꼭 필요한 ‘자일(seil)’의 ‘자’와 인수봉의 ‘인’이에요”라며 웃었다. 그의 오빠들도 ‘자’자 돌림이다.
김자인에게 클라이밍은 모태신앙처럼 보였다. 뼛속 깊이 산악인들인 가족의 영향으로 인해 이미 예정된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내 운명은 이 길이 맞아요.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거든요.”
대학 생활을 한 학기 남겨둔 김자인은 마지막 방학을 즐길 시간이 없다. 7월 15일부터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월드 챔피언십을 비롯해 10개의 국제대회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2009년에는 2등만 4번했지만 지난해에는 5연패를 하고 세계 랭킹 1위가 됐다. 올해는 취약했던 볼더링 결승에서 완등하며 우승. 바야흐로 전성기다.
“제게는 1등보다 완등이 더 중요해요. 선수로서의 전성기는 지금일 수도 있지만 제 인생의 전성기는 아직 멀었어요. 오르고 또 오를 겁니다.”
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 김자인은?
△생년월일: 1988년 9월 11일 △체격: 153cm, 43kg △소속: 노스페이스 클라이밍팀 △학력: 고려대 체육교육과 4학년 △세계랭킹: 종합 1위, 리드 1위 △주요 수상: 2011년 클라이밍 월드컵 밀라노 볼더링 1위, 빈 볼더링 4위, 캐나다 볼더링 3위, 미국 볼더링 4위. 2010년 록 마스터 대회 리드 1위, 월드컵 5연속 리드 1위, 아시아선수권 리드, 볼더링, 올라운드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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