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아메리카 선수들이 없다면 축구가 얼마나 재미없을까. 60년 전 스페인 레알마드리드가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를, 이탈리아 유벤투스가 오마르 시보리(이상 아르헨티나)를 영입하면서 남미 선수들은 유럽 구단들의 중심이 됐다.
요즘 최고의 선수는 누구일까. 단연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다. 단, 아르헨티나 대표팀이 아니라 FC 바르셀로나(바르사)의 메시다.
현재 아르헨티나에서 코파아메리카(남미축구선수권대회)가 열리고 있다. 그런데 시작부터 불길하다. 홈팀 아르헨티나가 볼리비아와 1-1로 비겼고 브라질도 베네수엘라와 0-0으로 무승부를 기록했다. 미리 아르헨티나의 탈락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12개국 중 8개국이 다음 라운드에 진출한다. 개막전 무승부는 흔히 있는 일이며 재앙도 아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는 기가 죽었다. 지난달 유럽의 스타들이 고향을 방문할 때 ‘바라브라바’로 불리는 리버플레이트 훌리건들이 거센 소동을 일으켰다. 리버플레이트가 110년 만에 처음 2부 리그로 떨어진 것에 대한 불만의 표시였다.
아르헨티나는 자국에서 열린 경기에서 한 번도 지거나 비기지 않은 볼리비아와 처음 비겼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볼리비아는 그날 경기에서 메시를 잡는 데 집중했다. 후반 3분 기가 막힌 힐 킥으로 선제골을 넣은 에디발도 로하스는 브라질 출신으로 볼리비아로 귀화한 선수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은 균형감이 없다. 공격수는 많은데 믿을 만한 수비수가 없다. 미드필더들은 상상력이 부족하다. 무엇보다 플레이메이커가 없다. 라틴아메리카에서 플레이메이커는 ‘판타시스타’로 통한다. 동료 선수에게 판타지와 상상력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디에고 마라도나가 감독이었을 때 그는 즉흥적으로 선수를 선발했다. 그는 공격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축구에선 기본이 더 짜릿함을 줄 수 있다. 지난해 남아공 월드컵에서 독일이 4강까지 기본의 중요함을 보여줬다. 그래서 훌리오 그론도나 축구협회 회장이 마라도나를 경질하고 세르히오 바티스타로 바꿨다. 바티스타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팀인 바르사처럼 선수들이 플레이하도록 유도한다고 말한다.
메시는 바르사 공격축구의 핵이다. 하지만 아르헨티나가 바르사 라인업을 본뜨려는 노력은 쓸모없는 짓이다. 바르사엔 사비 에르난데스가 있다. 아르헨티나는 사비 같은 선수가 없다. 사비는 바르사에서 성장해 스페인 대표팀의 핵이 됐다. 사비는 공격수의 움직임에 따라 한 치의 오차 없는 패스를 할 수 있는 눈과 뇌, 발을 가졌다.
바티스타 감독은 23세의 에베르 바네가를 아르헨티나의 사비라고 한다. 바네가는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성장한 선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바네가는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과 후안 로만 리켈메, 파블로 아이마르 같은 실패한 플레이메이커의 길을 가고 있다.
아르헨티나에서 사비 같은 선수는 오스발도 아르딜레스가 중원 사령관으로 활약하던 1978년까지 가야 겨우 찾을 수 있다. 그는 공격수 마리오 켐페스와 환상의 콤비를 이뤘다. 아르딜레스는 사비와 네덜란드의 베슬레이 스네이더르같이 경기를 지배하고 플레이를 창조하며 월드컵을 제패했다.
바네가는 가야 할 길이 멀다. 바네가가 이번 코파아메리카에서 실력을 발한다면 아르헨티나의 공격수들이 빛을 발해 25일 열리는 결승전까지 치고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성적에 불만을 품은 팬들의 시위를 막기 위해 쏜 최루탄에 눈물을 흘릴 것이다. 메시에게 볼을 찔러주는 플레이메이커가 없다면 메시는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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