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 전 주위에 ‘관이나 짜두라’고 했어요. 이번에 떨어지면 아예 화물기로 돌아올 작정이었죠.”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의 주역인 박용성 대한체육회장(71·두산중공업 회장). 그는 재수가 없을까 봐 이발도 안 하고 2년 동안 구두도 바꿔 신지 않았다. 10일 귀국하자마자 이발부터 한 박 회장은 곧 새 구두도 사 신을 예정이다.
11일 서울 중구 을지로 두산타워에서 기자와 만난 박 회장은 다소 피곤한 기색이었지만 “기분만은 최고”라고 말했다.
○ 2년 동안 헌 구두 신어
박 회장은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투표 결과를 적은 종이를 보고 흠칫 놀라자 승리를 직감했다고 했다. 이겼다고 확신한 박 회장은 공식 발표 전 옆방에서 따로 만세를 불렀다. 전날 표를 계산해 보니 53∼55표로 안정권이었던 터라 로게 위원장이 놀랄 만큼 표 차이가 많이 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결정된 후 계약서에 직접 사인을 할 때는 기분이 좋아 날아갈 것 같았다고도 했다. 이전 두 번의 유치활동 때는 IOC 위원이어서 다른 IOC 위원들을 만나 ‘선문답’을 주로 해 답답했는데 이번에는 대한체육회장 자격으로 “지지해 달라”며 후회 없이 득표활동을 했다.
박 회장은 이번 유치 성공의 일등공신이 이명박 대통령이라고 주저 없이 말했다. 국가원수가 한곳에서 닷새나 머문 전례가 없을뿐더러 머무는 동안 IOC 위원 30여 명을 만나 지지를 호소한 점이 크게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대통령은 보통 대규모 경호원단과 함께 다니는데 경호원 30여 명이 같이 다니는 것이 유치활동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가 나오자 이 대통령은 위험을 감수하고 경호 인력도 최소한으로 줄였다. 항상 검은 양복을 맞춰 입은 듯한 한국 유치인단을 보고 외국인들은 “장례식에 가느냐”고 놀렸다. 박 회장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서는 “자신의 회사 일도 저렇게는 못했을 정도로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정말 열심히 IOC 위원들을 만나고 다녔다는 것이다.
국내서도 화제가 됐던 프레젠테이션(PT)에 대해서는 논리와 준비의 승리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영어 PT 때 발음이 잘 안 되는 단어는 모두 뜻이 같으면서 이 대통령이 가장 발음을 잘하는 단어로 바꿔 발표했다.
김연아 선수는 1년 사이에 영어 실력이 비약적으로 늘어 많은 도움이 됐다. 원래 동영상에서는 김 선수 대신 영국인이 내레이션을 하기로 돼 있었는데, 김 선수가 워낙 잘해서 모두 하는 걸로 나중에 결정됐을 정도였다. 박 회장은 “보통 PT는 잘해야 본전이다. 그래서 표가 늘어나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이번 PT로 평창이 서너 표를 더 받았을 거라고 투표 직후 외국인들이 얘기했다”고 말했다. PT 테마이자 새로운 국가들에 기회를 줘야 한다는 ‘뉴 허라이즌(New Horizons·새 지평)’이라는 논리도 한몫을 했다. 박 회장은 “겨울올림픽은 주로 북미와 유럽에서만 열렸는데 올림픽기의 5개 링 중 3개는 어디다 잃어버렸느냐”고 항상 주장해 왔다.
○ “올림픽 개최는 나라가 아니라 강원도와 평창이 하는 것”
박 회장은 민주당이 주장하는 남북 공동개최에 대해서는 사실상 어렵다고 밝혔다. 그는 “올림픽 개최는 나라가 하는 것이 아니고 강원도와 평창이 하는 것”이라며 “어렵게 따온 올림픽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설상 종목의 경기력 향상과 관련해서는 스키의 경우 선수들을 학업과 훈련을 병행할 수 있는 독일의 스키학교로 보내고 여름에는 남반구인 뉴질랜드에서 전지훈련을 시킬 계획을 세웠다. 크로스컨트리 등 팔다리가 긴 선수들에게 유리한 종목은 한국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힘들지만 가능성이 있는 종목 위주로 꿈나무를 많이 기를 방침이다. 또 겨울올림픽으로서는 처음으로 100개국이 참여하는 올림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지금까지 겨울올림픽에는 통상 70여 개국이 참가해 왔다. 박 회장은 “좋은 올림픽을 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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