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세계육상선수권 예선 통과 모명희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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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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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출전하니 다른 별 온 기분 스타들이 외계인 같아 보였죠”

1983년 제1회 헬싱키 세계선수권에 참가했던 모명희 씨가 당시 ID카드를 목에 걸고 자신의 활약상을 보도한 스포츠동아 기사 스크랩을 펼쳐 보이고 있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1983년 제1회 헬싱키 세계선수권에 참가했던 모명희 씨가 당시 ID카드를 목에 걸고 자신의 활약상을 보도한 스포츠동아 기사 스크랩을 펼쳐 보이고 있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마치 다른 별에 온 듯했지요. 당대 최고 스타들이 외계인 같아 보였어요.”

28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또렷하다. 육상 여자 100m 한국 최고기록 보유자였던 모명희 씨(48)의 뇌리에 남아 있는 1983년 제1회 헬싱키 세계육상선수권대회 풍경이 그랬다.

모 씨는 전 세계 육상인의 첫 번째 축제를 경험한 한국 대표 3인방 중 한 명이다. 당시 장재근 대한육상경기연맹 이사(49), 김복주 한국체대 교수(51)와 함께 출전해 유일하게 예선을 통과하는 기쁨도 맛봤다. 그는 100m 예선에선 탈락의 고배를 마셨지만 200m에선 24초63의 기록으로 예선을 통과했다.

한국 육상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그는 “당시 한국 육상의 시야는 아시아에 머물러 있었다. 그 때문에 세계육상선수권이 그렇게 큰 대회인 줄도 몰랐다. 당시 함께 뛴 스타들이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그대로 출전했는데 무척 신기했다. 세월이 흘러 이렇게 큰 대회를 대구가 개최한다니 감개무량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모 씨는 당시 국가별 쿼터로 세계선수권에 참가하는 행운을 누렸다. 그는 “초대 대회라 대회 조직위가 육상 약소국을 많이 배려했다. 미국 전지훈련 중 생소한 북유럽 핀란드에 간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흥분됐다”며 “대구 대회에서도 육상 변방에 있는 나라의 선수들이 활약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모 씨는 현재 서울 송파구 세륜중에서 체육교사로 일하고 있다. 1985년 2월 서울대 사범대 체육과 졸업 후 한강여중에 부임해 한때 육상 꿈나무를 가르치기도 했다. 전 국가대표 김혜영, 변영례 등은 그가 키워낸 보물들이다.

모 씨는 육상인 가족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남편은 백형훈 육상연맹 이사(49)다. 대구 세계육상선수권 유치전 때는 통합기술위원장으로 활동하며 개최권 획득에 힘을 보탰다. 모 씨는 “현재 육상부가 없는 학교에 있다 보니 육상을 잠시 잊기도 했다. 하지만 대구 세계육상선수권이 나의 육상 DNA를 다시 끓게 만들어줬다. 남편과 함께 꼭 대구 스타디움에 가서 후배들을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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