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사상 최연소로 통산 5번째 메이저 트로피에 입을 맞춘 청야니(22·대만). 환호하는 그를 바라보며 아쉽게 발걸음을 돌린 비운의 주인공이 있다. 청야니와 맞대결을 펼친 동갑내기 카롤리네 마손(22·독일). 마손은 이틀 연속 단독 선두를 질주하다 4라운드에서 출전 선수 67명 가운데 3번째로 나쁜 78타로 무너져 공동 5위에 그쳤다.
세계 141위였던 마손은 세계 1위 청야니 앞에서 경험 부족을 드러내며 크게 흔들렸다. 1∼3라운드 평균 29개였던 퍼트 수는 36개까지 치솟았다. TV 해설가는 “어제와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됐다”며 안쓰러워했다. 반면 “마손이란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다”며 큰소리를 쳤던 청야니는 2타 차 2위로 출발해 역전 우승을 이뤘다.
메이저 골프대회에서는 이처럼 잔혹사라는 말이 나올 만큼 돌풍을 일으키던 무명 또는 신예들이 마지막 날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프랑스의 장 방드 벨드는 1999년 브리티시오픈 4라운드에서의 몰락으로 요즘도 심심치 않게 거명된다. 17번홀까지 3타 차 선두였던 그는 18번홀에서 더블보기만 했어도 우승이었으나 트리플 보기로 연장을 허용한 끝에 패했다.
2004년 마스터스에서 47번째 도전 끝에 메이저 첫 승을 거둔 필 미켈슨(미국)은 2006년 US오픈에서 1타 차 선두였던 마지막 날 18번홀에서 더블보기를 해 우승을 놓친 뒤 “진짜 바보였다”고 한탄했다. 미켈슨은 US오픈에 21번 출전해 준우승만 5번했을 뿐 정상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박태환, 유소연 등의 상담을 맡고 있는 조수경 스포츠심리학 박사는 “어떤 상황에도 자신감 속에 평상심을 유지하는 선수가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청야니는 붙임성이 좋고 다양한 환경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려는 기질이 높다. 이런 성격이 경기력 향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평가했다.
골프뿐 아니라 다른 스포츠에서도 큰 무대에서 강심장과 새가슴은 대조된다. 프로야구 KIA의 김정수 2군 투수코치는 해태 시절 한국시리즈에서만 통산 7승(구원 4승 포함)을 거둬 이 부문 1위에 올라 있다. 프로 신인이던 1986년 한국시리즈에서만 홀로 3승을 챙기는 두둑한 배포를 과시했다. 반면 김시진 넥센 감독은 한국시리즈에서 역대 최다인 7패를 당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나경민 대교 여자배드민턴 감독은 혼합복식에서 국제대회 70연승 이상을 기록하며 최강으로 군림했으나 올림픽에서는 울렁증을 호소하며 노 골드에 그쳤다.
축구에서 승부차기는 천하의 골잡이라도 달갑지 않다. 골대를 넘기거나 상대 골키퍼에 막히기라도 하면 역적이 될 수도 있어서다. 박지성과 이영표는 승부차기 실축의 악몽이 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차범근 전 수원 감독은 A매치 데뷔전이었던 1972년 아시안컵 이라크와의 경기에서 승부차기에 나섰다 공이 골대를 넘어 관중석까지 날아간 뒤 키커를 꺼렸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에 비해 프로농구 최다인 5개의 우승반지를 차지한 추승균(KCC)은 경기 막판 긴박한 접전에서도 높은 자유투 성공률을 지녀 코칭스태프를 흐뭇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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