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팀 맡아 6번 해고… ‘野神 잔혹史’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19일 03시 00분


■ SK, 김성근 감독 해임… 이만수 감독대행 임명


일본에서 태어난 그는 ‘조센징’ 소리를 들으며 야구를 했다. 한국에 와선 ‘쪽발이’로 불렸다. 어느 곳에서도 그는 환영받지 못하는 이방인이었다.

믿을 건 실력뿐이었다. 실력을 갖추려면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 했다. 학연도 없고, 지연도 없었다. 야구에 자신의 전부를 걸어야 했다. 그런 열정 덕에 그는 ‘야신(野神·야구의 신)’이 될 수 있었다. 지난 4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했고, 3번 우승했다.

SK 김성근 감독이 18일 전격 경질됐다. 스스로 “올해 계약이 끝나면 감독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한 지 하루 만이다. 구단은 “이런 상태로 남은 시즌을 운영하면 파행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김 감독 대신 이만수 2군 감독을 감독대행으로 임명한다”고 발표했다.

○ 거센 후폭풍

김 감독은 이날 오전 인천 문학구장에서 민경삼 단장에게서 해고 통지를 받았다. 김 감독은 곧바로 미팅을 소집해 선수단과 작별 인사를 나눈 뒤 구장을 떠났다. 김 감독은 “야구 선수로서 자존심을 잃지 말라. 남은 시즌 잘 치르고 아시아시리즈까지 가 꼭 이겨 달라”고 당부했다.

‘김성근 사단’으로 불리던 코치들도 줄줄이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홍범 수석코치와 다시로 도미오 타격코치가 즉시 그만두겠다는 뜻을 밝혔다. 2군에서도 코치 4명(이광길, 박상열, 후쿠하라 미네오, 고바야시 신야)이 사의를 나타냈다. 이들은 SK의 젊은 유망주들을 키운 핵심 코치들이다.

선수들도 할 말을 잃었다. 이날 삼성과의 홈경기에 앞서 더그아웃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한 선수는 “어제부터 잠을 제대로 못 잤다. 이전처럼 선수단이 힘을 낼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팬들은 김 감독을 경질한 구단에 대해 분노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 여성 팬은 “존재감 없던 SK는 김 감독이 온 뒤 명문 구단이 됐다. 역사적인 명장을 이렇게 놓쳐도 되는 것인가”라고 말했다.

○ 타협은 없다

김 감독은 한국 프로 스포츠 사상 가장 많은 팀의 사령탑을 맡았다. 1984년 OB(현 두산)를 시작으로 태평양, 삼성, 쌍방울, LG, SK를 거쳤다. 거꾸로 말하면 그만큼 많이 잘렸다. SK가 6번째 팀이었으니 프로에서만 6번째 해고다. 아마추어까지 치면 12번째다. 참고로 김 감독은 재계약에 실패한 것도 해고당했다고 얘기한다.

김 감독은 LG를 한국시리즈에 진출시켜 준우승한 2002년에도 “지도 스타일이 LG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경질됐다. 몸담는 구단마다 갈등을 빚은 끝에 경질되거나 재계약에 실패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정작 그는 자신을 “참 다루기 쉬운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냥 내버려두면 알아서 한다는 거다. 문제는 그를 내버려두는 구단이 한 곳도 없었다는 것이다. 지난해 발간된 자서전 ‘꼴찌를 일등으로’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구단은 야구를 이용하려고만 들었지 존중할 줄 몰랐다. 감독을 우습게 보는 건 야구를 우습게 보는 거다. 야구를 우습게 보는 것은 절대 참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구단과 부딪힌다. 이것이 내가 까칠한 이미지를 마다하지 않는 이유다. 야구는 결코 얕잡아볼 운동이 아니다.”

김 감독은 지옥훈련과 벌떼야구, 데이터야구 등으로 대변되는 자신만의 야구를 해왔다. 김성근식 야구는 감독이 전권을 갖고 움직이는 야구다. 프런트가 간섭하면 성립할 수 없는 야구다.

○ 야구는 계속된다

김 감독은 다시 야인으로 돌아갔다. 그렇지만 야구와의 질긴 인연은 계속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선수들이 그를 따른다. 지옥훈련을 시킬 때면 선수들은 뒤에서 그를 욕한다. 하지만 결국 그게 자신들을 위한 것임을 깨닫고 존경하게 된다. 김 감독은 겉으론 티를 내지 않아도 속정이 깊다. 은퇴 등 인생의 기로에 선 많은 선수가 마지막으로 찾는 이는 김 감독이다. LG에서 잘린 직후인 2002년 말 그의 회갑연 때 그가 거쳤던 팀들의 제자 수십 명이 자리를 함께한 것도 그런 이유다.

예전에도 그랬듯 그를 찾는 구단은 또 나올 것이다. 팀 재건에 그만한 적임자는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 구단과 갈등을 빚어서 잘리면 또 다른 구단이 그를 찾을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그는 어딘가에서 대학생이나 고등학생을 가르치고 있을 것이다. 그에게 야구는 죽는 날까지 함께할 인생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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