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세계육상선수권 D-5]‘장거리’ 황제 vs 전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22일 03시 00분


베켈레… 누구도 그에게 등을 보여주지 못한다


‘육상의 꽃’을 거론할 때 어떤 때는 마라톤이, 어떤 때는 남자 100m가 꼽힌다. 마라톤은 가장 긴 거리를 달려서, 100m는 가장 짧은 시간에 승부가 결판나기 때문인 듯하다. 둘 중 어느 쪽이 진짜 육상의 꽃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5000m, 1만 m 같은 장거리 레이스는 꽃이라 불리는 일이 없다. 그래서인지 이 종목 선수들이 웬만큼 잘해서는 100m나 마라톤 선수만큼 이름을 알리기 어렵다.

장거리 선수들이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려면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에서 한두 번 우승하는 걸로는 부족하다. 당대의 다른 선수들을 압도하는, 다른 선수들이 감히 따라갈 엄두조차 못 내는 그런 경기력을 보여줘야 한다.

케네니사 베켈레(29·에티오피아)가 바로 그런 선수다. 남자 5000m(12분37초35)와 1만 m(26분17초53) 세계기록 보유자인 베켈레는 이번 대구 대회에서 세계선수권 1만 m 5연패에 도전하는 장거리의 황제다. 세계선수권에서 트랙 종목 5연패는 지금껏 나온 적이 없다.

에티오피아의 해발 2000m가 넘는 곳에서 나고 자란 그는 고지대 생활로 기른 심폐지구력을 바탕으로 21세이던 2003년 파리 세계선수권 1만 m에서 우승하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다. 2009년 베를린 대회까지 세 차례나 타이틀을 방어하며 4연패를 이뤘고, 2004년 아테네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베이징 올림픽과 베를린 대회 때는 5000m까지 우승하며 2관왕을 차지했다.

베켈레는 ‘번개’ 우사인 볼트(자메이카)에게 600m 승부를 제안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베켈레의 제안은 볼트가 한 기자회견에서 나온 질문에 “800m라면 몰라도 600m까지는 베켈레와 붙어도 자신 있다”고 말한 데 대한 응수였다. 하지만 둘의 맞대결이 이뤄지지는 않았다. 베켈레가 갖고 있는 1만 m 세계기록은 100m를 평균 15초8에 뛰어서 나온 기록이지만 그가 막판 스퍼트를 할 때는 100m를 11초대에 끊은 적도 있다. 대구 대회 남자 1만 m 결선은 이틀째인 28일 열린다.

베켈레가 장거리의 살아 있는 전설이라면 고인이 된 에밀 자토페크(1922∼2000·체코)는 사라진 전설이다. 1940, 50년대 무적이었던 자토페크는 올림픽에서 5000m와 1만 m, 마라톤을 동시 제패한 유일한 선수다. 1948년 런던 올림픽 1만 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자토페크는 4년 뒤인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5000m와 1만 m, 마라톤을 석권했다. 1만 m를 뛴 3일 뒤 5000m를 달리고 다시 4일 뒤 42.195km 마라톤에 나서는 그를 본 사람들은 ‘달리는 기관차’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자토페크는 ‘왜 달리는가’라는 질문에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친다. 그리고 인간은 달린다”는 대답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자토페크가 폐렴과 심장질환을 앓다 2000년 11월 숨지자 체코 정부는 그의 장례식을 국장으로 치렀을 정도로 장거리 종목에서는 다시 나오기 힘든 스타였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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