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육상]하루만에 웃음 되찾은 볼트 “200m선 번개 칠 준비 됐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30일 03시 00분


동료들과 400m 계주 연습

‘번개’ 우사인 볼트(25·자메이카)는 28일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100m 결선에서 부정 출발로 실격한 뒤 벼락같이 화를 내며 트랙을 떠났다. 볼트의 자메이카 동료들은 “지진이 난 것 같았다”고 했다.

하지만 볼트는 29일 언제 그랬냐는 듯 웃는 얼굴로 나타났다. 볼트는 이날 오후 4시쯤 대구 동구 율하동 선수촌 옆 훈련장에서 동료들과 400m 계주 훈련을 했다. 전날 선수촌에 들어간 오후 11시 이후 약 17시간 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볼트가 훈련장에 나타날 때까지 그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선수촌 관계자는 “볼트가 선수촌에 없다”고 얘기한 반면 볼트의 후원사인 푸마 측은 “선수촌에서 쉬고 있다”고 말해 취재진을 헛갈리게 했다.

볼트는 훈련 내내 웃는 모습이었다. 동료들과 장난도 주고받았다. 방방 뛰며 머리를 쥐어뜯던 전날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볼트는 100m에서 금메달을 딴 자신의 훈련 파트너인 요한 블레이크(22), 네스타 카터(26)와 함께 9월 4일 이번 대회 마지막 경기로 열리는 400m 계주에 대비해 바통 터치 연습을 집중적으로 했다. 100m에서 볼트의 유력한 라이벌로 거론됐으나 사타구니 부상으로 출전을 포기한 아사파 파월(29)도 계주 훈련에는 참가했다.

밝은 표정으로 1시간 20분가량 훈련한 볼트는 언론의 지나친 관심이 부담스러웠던지 훈련복 상의로 얼굴을 가린 채 선수촌 안으로 들어갔다. 볼트는 에이전트 리키 심스를 통해 “남자 200m 예선에 전념하겠다. 200m가 끝나면 400m 계주도 뛰어야 한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볼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훈련장에 나타났지만 그가 100m에서 실격되고 하룻밤 사이에 후폭풍은 엄청났다. 당장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이 세계선수권에서는 처음 도입한 ‘부정출발 단번 실격’이 논란이 됐다. IAAF는 2년 전 베를린에서 열린 제47차 총회 때 10종 경기를 포함한 복합경기를 빼고는 부정 출발 선수를 한 번의 실수만으로도 실격 처리하기로 했다. 이 규정은 지난해 1월 1일부터 적용됐지만 세계선수권에서 적용되기는 이번 대회가 처음이다. 이전까지는 처음에 부정 출발한 선수는 봐줬고 두 번째 부정 출발부터 실격시켰다. 이번 대회 남자 100m에 출전한 한국의 김국영 등이 단번 실격 규정에 걸려 트랙에서 쫓겨날 때까지는 별 말이 없던 DPA 등 일부 외신이 볼트가 걸리자 규정을 문제 삼기 시작한 것이다. 한 번 실수했다고 뛸 기회조차 주지 않는 건 너무 가혹하다는 것이다.

외신들이 논란을 제기하자 IAAF는 “당장 규정을 바꾸지는 않겠지만 논의해 보겠다”고 한 발 물러서면서 규정 변경의 가능성은 일단 열어 놨다.

이런 파장에 일부에서는 볼트가 일부러 부정 출발했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항상 반응시간과 스타트가 늦어도 여유 있게 우승하던 그가 ‘가혹한 스타트 규정’ 논란에 불을 댕기기 위해 ‘살신성인’했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볼트는 2009년 베를린 대회 결선에서도 반응시간이 5위였지만 세계기록(9초58)으로 우승했고 이번 대회에서도 출발은 늦었지만 여유 있게 결선에 안착해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혔다. 볼트가 100m에서 어이없이 실격하자 남은 200m에서 볼트의 실격 여부를 놓고 베팅을 하는 일도 벌어졌다. 영국의 베팅 전문사이트 윌리엄힐은 ‘볼트 스페셜 베팅’을 내놓았다. 볼트의 200m 실격 여부에 돈을 걸라는 것이다. 우승 확률이나 승패가 아닌 실격 여부를 놓고 베팅을 하라는 건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대구=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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