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육상]‘표지모델의 저주’ 사비그네마저…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2일 03시 00분


쿠바 세단뛰기 여왕, 돌발부상에 눈물의 기권… 3연패 좌절와일드 카드로 결선 오른 우크라이나 살라두하 감격 우승

눈물이 흘렀다. 코치가 가자며 등을 떠밀었지만 쉽게 발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1일 여자 세단뛰기 결승이 열린 대구스타디움. 세계선수권대회 3연패에 도전한 야르헬리스 사비그네(쿠바)는 이번 대회에서도 강력한 우승 후보였다. 수상 경력만 봐도 알 수 있다. 2002년 국제대회에 처음 참가한 뒤 2007년 세계선수권과 세계육상 파이널, 2008년 세계실내선수권, 2009년 세계선수권 등에서 1위에 오르며 세단뛰기의 여왕이라 불렸다. 이번 대회 참가 선수 중에서 최고 기록(15.28m)인 것은 물론이고 올 시즌 기록(14.99m)도 1위다.

지난달 30일 열린 예선에서도 사비그네는 단연 돋보였다. 14.62m로 참가 선수들 중 가장 멀리 뛰었다. 같은 쿠바의 마벨 가이(14.53m)와 카테리네 이바르궨(14.52m·콜롬비아)이 뒤를 이었다. 사비그네와 우승을 다툴 올며 결승 진출 기준 기록인 14.45m를 통과하지 못했지만 와일드카드로 힘겹게 진출했다. 사비그네는 우승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대구조직위가 발간하는 데일리프로그램의 저주가 이어진 탓일까. 데일리프로그램 표지 모델로 나선 각 종목 우승 후보 선수들이 줄줄이 우승하지 못한 저주를 사비그네도 피하지 못했다. 결승에 나선 사비그네는 첫 번째 시도에서 14.43m에 그쳤다. 그러자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다. 두 번째 시도에서 뛰는 도중 오른쪽 허벅지에 통증이 왔다. 세 번째 시도에서는 아예 점프도 하지 못했다. 사비그네는 결국 코치와 상의한 뒤 기권을 선언했다. 눈물을 흘리던 사비그네는 한동안 경기장을 떠나지 못하고 우두커니 앉아 경쟁자들의 모습을 지켜봤다.

결국 우승의 영광은 와일드카드로 결선에 올라와 올 시즌 3위 기록(14.98m)을 낸 살라두하가 차지했다. 살라두하는 첫 번째 시도에서 14.94m를 뛰며 일찌감치 리파코바(14.89m·2위), 이바르궨(14.84m·3위) 등 경쟁자들을 따돌렸다. 한편 국적도 세단뛰기처럼 ‘쿠바-수단-영국’으로 바꾸며 이번 대회에 참가한 야밀레 알다마는 5위(14.50m)를 기록했다. 39세로 참가선수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알다마는 쿠바 태생으로 1999년 세계선수권에서 2위에 오르며 주목받았다. 2001년 스코틀랜드 출신인 남편과 결혼해 영국으로 이주한 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영국 대표팀으로 출전하려 했다. 하지만 영국 국적을 얻기 위해서는 3년 동안 거주해야 한다는 규정이 발목을 잡았다. 결국 수단 국적으로 올림픽에 나가 5위를 기록했다. 10년 만인 올해 영국 국적을 얻은 알다마는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A기준 기록(14.30m)을 통과하며 출전권을 땄다. 이번 대회에서 올 시즌 최고 기록을 세우며 ‘인생의 세단뛰기’를 성공적으로 이어갔다.

대구=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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