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에 있을 땐, 그냥 이대로 끝나나 했어요. 부정적인 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그런데 다시 1군에 오니 행복하네요. 승리투수요? 지금 그거 못하면 어때요. 다시 희망을 발견했다는 게 중요하죠.”
넥센 투수 김수경(32·사진)에게 좀처럼 승운이 따르지 않고 있다. 6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SK와의 홈경기에 선발등판해 6이닝 동안 3실점(2자책점)으로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했고, 4-2로 리드해 승리투수 요건을 갖춘 상황에서 물러났지만 첫승 달성에 또다시 실패했다. 8회초 동점을 허용하면서 연장 12회 무승부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번만이 아니다. 바로 앞선 지난달 31일 잠실 두산전에서도 7이닝 1실점으로 역투하면서 2-1로 앞선 상황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9회말 통한의 동점이 되면서 승리가 날아갔다. 8월 19일 목동 KIA전도 마찬가지였다. 5이닝 1실점으로 호투한 뒤 2-0으로 앞선 상황에서 내려왔지만 구원투수들의 난조로 승리와 인연을 맺지 못했다.
적어도 3차례는 승리투수가 될 수도 있었던 상황. 하지만 하늘은 그에게 인내를 요구하고 있다. 2009년 9월 23일 목동 두산전에서 개인통산 111승째를 기록한 것이 마지막 승리였다.
아쉽지 않을까. 7일 목동구장에서 만난 그는 이같은 질문에 그냥 웃었다. 아쉬운 웃음이 아니라 홀가분한 웃음이었다. “지금 저에게 승리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벼랑 끝에 섰다가 다시 여기(1군)에 와서 선발투수로 뛸 수 있다는 게 행복할 뿐입니다. 희망이 생겼잖아요. 이대로 유니폼을 벗지 않아도 된다는 희망요. 지금은 그거면 족해요.”
2년 가까이 승리투수가 되지 못하는 상황. 승리에 대한 목마름과 조바심이 생길 법도 했지만 오히려 해탈의 경지에 올라선 사람마냥 여유가 묻어났다. 지난해 첫 등판에서 부진하자 스스로 짐을 싸서 2군행을 자처했던 그였다. 김시진 감독에게 스스로 납득할 수 있을 때 1군에 오겠다는 약속을 한 뒤 버스를 탔다. 그러나 ‘땅끝마을’ 강진에서 기다리던 희망은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떨어진 스피드가 오르지 않았다. 자신감은 점점 떨어져 갔다. 희망을 발견하러 간 외딴 곳에서 그는 희망 대신 절망 속에서 몸부림쳤다.
“그땐, 자꾸 부정적인 생각이 들더라고요. 잡생각…. 그냥 이렇게 끝나나? 옷을 벗어야하나? 그랬던 제가 어려운 시간을 견뎌서 이렇게 1군에 왔잖아요. 요즘엔 선발투수로 살아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야구장에 나오는 게 즐거워졌어요.”
그는 최근 연이어 호투를 펼치지만 여전히 과거의 구속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직구구속은 130km대 후반에 불과하다. 특별히 구종을 추가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던져도 타자를 이길 수 있는, 선발투수로서 효용가치가 있는 투수로 재탄생하고 있다.
“중요한 건 역시 자신감인 것 같아요. 135, 138km짜리 직구라도 내 공을 믿느냐, 못 믿느냐의 차이. 자신 있게 타자 몸쪽으로 찌르니까 되더라고요. 여기서 안 되면 옷 벗겠다는 생각을 하니 오히려 홀가분해지더라고요. 또 다시 난관에 부딪치고 숙제도 발견되겠죠. 솔직히 아직은 마음의 여유가 없지만 희망적으로 생각하기로 했어요.”
그는 특유의 천사 같은 미소를 지었다. “이젠 태어난 지 4개월 된 아들과 떨어져 살지 않아도 되니까 다행”이라고 웃는 그의 모습에서 다음 등판에 대한 기대감이 묻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