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장11회말 2아웃 풀카운트 주자 만루
볼에 방망이 나갔지만 행운의 안타 연결
마침내 해결사 역할…주장 맘고생 훌훌
연장 11회말 2사 만루 풀카운트에서 투수는 스트라이크가 아닌 볼을 던졌다. 그 볼에 타자의 방망이가 나갔다.
그런데 볼에 휘두른 방망이에 맞아 나간 타구는 끝내기안타가 됐다. 영웅과 역적의 차이는 이렇듯 한없이 가까울 수 있다. 이것이 야구다.
SK 이호준은 9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KIA와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단 한순간의 활약으로 줄곧 지탄 받던 운명을 바꿔놓는 야구의 묘미를 보여줬다. 1차전에 4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장했으나 1루수 파울플라이, 삼진을 당하고 안치용으로 교체됐다. 9일 2차전에선 최동수에 밀려 아예 선발에서도 제외됐다.
“벤치에서 서재응과 경쟁하겠다”고 농담했지만 마음이 편할 리만은 없었다. SK의 주장, FA 4년 계약의 마지막 시즌…. 누구보다 절실한 포스트시즌이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공격이 안 풀리자 SK 이만수 감독대행은 7회말 이호준을 대타 카드로 꺼내 들었다. 2-2 동점을 만든 2사 1·3루 찬스였다. 그러나 KIA 한기주를 맞아 3루 땅볼로 아웃됐다.
2-2로 맞선 9회말에도 2사 만루 끝내기 찬스에서 초구를 건드려 힘없는 유격수 땅볼로 물러났다. 그리고 11회말 2사 2·3루가 되자 KIA 벤치는 SK 4번타자 박정권을 고의4구로 피했다. 박정권은 7회와 9회에도 볼넷으로 걸어 나갔다.
3번째 기회, 흐름상 더 이상 연장전이 이어지면 SK 불펜도 바닥을 드러낼 상황이었다. 연장 15회까지 더 가면 설혹 이기더라도 소모가 엄청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이호준은 한기주로부터 연속 볼 3개를 골랐다. 그 다음에 한기주는 연속 스트라이크를 던졌다. 마지막 6구, 한기주는 141km짜리 직구를 선택했다. 그러나 안 쳤으면 볼 판정을 받을 만한 낮은 볼이었다.
이때 이호준의 방망이가 나왔고, 어찌 어찌 맞아나간 땅볼 타구는 KIA 2루수와 유격수 사이로 빠져나가는 절묘한 코스의 끝내기 중전안타가 됐다. 3루주자 안치용이 홈을 밟았고, 1루로 달려 나간 이호준을 선수단 전체가 얼싸안았다.
이호준은 준PO 기간 몸이 안 좋아 영양주사를 맞는 등 난조를 보였지만 포스트시즌 첫 안타를 극적인 순간에 터뜨려 SK를 구했다. 유독 포스트시즌에서 1차전 승률이 낮은 SK이기에 2차전 반격은 더욱 의미 깊었다.
“예상 밖 낮은공…무조건 맞히려 했다” ● 이호준=(9회에 쳐서) 30분 먼저 끝냈어야 하는데 미안하다. 무조건 직구라고만 생각했다. 낮은 볼이었지만 방망이를 멈출 수가 없어서 어떻게든 맞히려 했다. 광주 가서도 잘 풀릴 것 같다. “결정적 순간, 캡틴 역할 해줘 고마워” ● 이만수 감독대행=주장으로서 큰 경기여서 시즌 때처럼 부담도 많았을 텐데 결정적인 순간에 해줬다. 상황이 안 좋은데도 필드뿐 아니라 벤치에서도 팀을 이끌려고 1년 내내 노력한 선수다. 잘 안 맞아도 솔선수범해줘 늘 고맙다. “체력 부담 컸을텐데…근성 돋보여” ● 정경배 타격코치=볼을 쳐서.(웃음) 찬스에 약하다고 많이들 그래서 마음고생이 심했을 텐데도 잘 해줬다. 체력이 예전만 못할 텐데도 하려고 하는 근성이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