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포수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고교에 진학했습니다. 하지만 훈련 첫날부터 이상한 얘기를 듣습니다. “다른 아이가 포수를 봐야 하니 너는 내야수나 해라.” 게다가 그 친구는 중학교 때까지 한 번도 포수를 해본 적이 없답니다. 그냥 갑자기 포수가 하고 싶어졌다고 떼를 쓴 겁니다.
내야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의기소침해 있던 어느 날, KIA 이성우(30·사진)는 알게 됩니다. 자신을 밀어낸 동기생이 당시 동문회장의 아들이었다는 것을요. “어린 마음에 얼마나 서러웠는지 몰라요. 우리 어머니는 식당일과 파출부일을 하시면서 제 뒷바라지로 고생하시는데…. 그 때 결심했어요. 빨리 프로야구 선수로 성공해서 돈을 많이 벌겠다고요.”
그래서 대학에 가지 않고 포수로 LG 입단 테스트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연봉 1500만원을 받아가며 3년째 연습생으로 지내는 동안 원대했던 꿈은 작아져만 갔습니다. 상무 제대 후 다시 SK에 신고선수로 입단한 후에도 시간은 더 걸렸고요. 마침내 프로야구 정식 선수로 등록된 건, 고교 졸업 후 7년 가까이 흐른 2006년 6월입니다.
“오기 하나로 버텼어요. 밑바닥에 오래 있다 보면 별별 소리를 다 듣거든요. ‘평생 프로는 못 될 거다’부터 ‘볼이나 모아 와라’, ‘야구 말고 청소나 해라’ 까지….” 높고도 험한 현실의 장벽이 느껴질 때는 고교 시절의 핍박을 떠올립니다. 그럼 새로운 열정이 다시 끓어오르니까요.
멋쩍게 웃던 그가 말합니다. “한 때는 1군 경기 전광판에 이름 한 번 떠 보는 게 소원이었어요. 저처럼 어렵게 올라온 선수에게는 중요한 일이거든요.
꼭 들고 싶었던 포스트시즌 엔트리에 포함됐으니, 이번에도 전광판에 이름 한 번 새기고 싶은데…. 그럼 한국 야구 기록 어딘가에 제 포스트시즌 출장 기록도 남겠죠?” 12년 프로 인생의 대부분을 ‘무명’으로 살아온 서른 살 백업 포수. 그래서 더 간절한 희망일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