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프로축구 신인드래프트 일정이 확정됐다. 21일까지 신청 접수가 끝나면 다음달 9일 새내기들의 운명이 결정된다. 신인드래프트 현장에는 언제부턴가 색다른 장면들이 연출되기 시작했다.
각 구단 1순위로 낙점된 선수와 부모들을 대상으로 이른바 ‘모셔가기’ 전쟁이 치열해진 것이다. 일부 선수 부모는 행사가 끝나기도 전에 특정 에이전트사가 제공한 고급승용차에 몸을 싣고 어딘가로 사라지기도 한다. 최고 연봉이라야 5천만 원에 불과한 신인 1명을 확보하기 위해 외제차를 사주겠다고 제의하는 에이전트도 있다고 하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하지만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얘기들을 접할 때마다 무척이나 안타깝다. 대어가 될지, 미꾸라지가 될지 모를 신인을 위해 대책 없이 물량공세를 하는 에이전트도 문제지만 자칫 헛바람이 든 부모들이 자식을 망칠까 두렵다.
선수가 성장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게 부모이고, 부모가 자식에 대해 객관적 관점을 잃기 시작하면 선수의 미래는 이미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한 것이다.
에이전트의 시각에서 볼 때 한국의 선수나 부모들은 대체로 ‘용의 꼬리’ 보다는 ‘닭 머리’가 되고픈 심리가 강한 것 같다. 에이전트사에서 대우를 받으려면 자기보다 더 큰 선수가 있는 게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선지 국가대표 선수들의 면면을 보면 같은 소속사 선수가 2명을 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모두가 ‘머리’가 되기를 원하기 때문에 빚어진 현상이다.
문제는 ‘닭의 머리’가 많아질수록 에이전트의 전문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표급 선수라면 유럽진출이 궁극적인 목표일텐데, 자신을 우두머리로 대우해주는 에이전트사는 경험이 없어 해외진출을 시켜줄 실력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일본은 ‘용의 꼬리’를 선호하는 심리가 역력하다. 최근 일본선수들의 유럽진출은 여러 국가에 걸쳐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데, 이를 주도하는 것은 불과 1∼2명의 에이전트다.
유럽에 진출하려면 ○○에이전트와 계약을 맺어야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돼있다. 이러한 쏠림현상에 거부감도 없다. 일본 특유의 집단 정서가 반영된 것이기는 해도 필자는 이것이 일본축구가 급격히 강해지고 있는 원인이라는 우려를 지울 수가 없다.
축구선수에게 ‘용’이 된다는 것은 유럽진출에 성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비록 꼬리라도 용의 일부분이 되기 위해선 겸손함과 인내, 웬만한 어려움은 스스로 타개해 나갈 수 있는 내공을 갖춰야 한다.
지금은 비록 용의 꼬리에 불과하지만 인고의 세월을 이겨내면 언젠가는 용의 머리가 되어 하늘 높이 승천할 날이 올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자존심이다.
닭은 그 머리의 벼슬이 아무리 위엄이 있어도 닭일 뿐이다. 닭의 머리로 떠받들어지길 바라면서 동시에 용을 넘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신인드래프트 현장에서 에이전트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는 순간 이미 제 자식이 닭의 머리로 전락하기 시작했음을 부모들이 알아차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