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훈 기자의 끝내기 홈런]‘야생야사’…승리의 밤, 부산은 뜨거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19일 03시 00분


야구에 살고 야구에 죽는다

17일 부산의 밤은 뜨거웠다. 사직야구장 부근의 술집은 인산인해였다. 롯데 유니폼을 입은 야구팬들은 환하게 웃으며 건배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거리에서 서로를 부둥켜안고 하이파이브를 했다. 가게들은 약속이나 한 듯 대형 멀티비전에 롯데와 SK의 플레이오프 2차전 하이라이트를 틀어놓았다.

사직구장 부근의 한 횟집. 0-0으로 맞선 6회 1사 1루에서 롯데 전준우가 좌중간 담장을 살짝 넘기는 결승 2점 홈런 장면이 나오자 몇몇 손님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저기 담장 옆에 내 얼굴 보이지? 지금 봐도 짜릿하구먼.”

롯데 팬들이 이토록 흥분한 데는 이유가 있다. 이날 롯데는 4-1로 이겨 1승 1패를 기록했다. 단순한 1승이 아니다. 1999년 10월 17일 삼성과의 플레이오프에서 6-5로 이긴 뒤 정확히 12년(4383일) 만에 거둔 포스트시즌 홈경기 승리였다.

전날 롯데가 SK에 6-7로 재역전패를 당했을 때 부산 팬들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한 택시 운전사는 “저렇게 어이없이 지니까 꼴데(꼴찌를 자주 한다는 의미의 별칭)지”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6-6으로 맞선 9회 1사 만루의 득점 기회를 살리지 못해 상대 팀의 기를 살려줬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이튿날 송승준의 1실점 역투와 전준우 강민호의 홈런으로 승리하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다.

롯데 양승호 감독은 그런 열혈 팬들이 고마우면서도 무서운 존재라고 했다. 그는 “팀이 잘하건 못하건 표정 관리에 신경 쓴다”고 말했다. 걸출한 입담으로 기자들을 웃기는 그이지만 경기 도중에는 거의 웃지 않는다. 롯데의 든든한 후원군이자 기대에 못 미칠 때는 비판을 쏟아내는 팬들의 시선을 의식해서다.

롯데는 19일부터 SK의 홈인 문학에서 2연전을 치른다. ‘구도(球都)’ 부산 팬들의 뜨거운 열기는 이제 문학구장으로 향해 있다. 초보 사령탑인 양 감독은 팬들의 기를 받아 승리할까. 아니면 SK 이만수 감독 대행의 ‘믿음의 야구’가 빛날까. 두 팀의 참승부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부산에서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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