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한국시리즈(KS) 1차전 2-2로 팽팽히 맞선 5회말 1사 3루 스퀴즈번트를 시도하던 삼성 박종호가 공에 손가락을 맞아 병원으로 후송됐다. 예기치 못한 부상으로 갑작스럽게 타석에 선 이는 만년 백업요원이었다. 볼카운트 2-2, 성공보다 실패의 확률이 더 높았지만 그는 힘차게 배트를 돌렸고 결승2루타를 터트렸다. 삼성이 3년 만에 우승을 거머쥘 수 있었던 신호탄이었다. 이뿐만 아니다. 2002년 KS 6-9로 뒤지던 6차전 9회말 선두타자로 나가 2루타로 추격의 불씨를 살렸다. ‘가을’하면 떠오르는 사나이, 김재걸 현 삼성코치의 이야기다.
그에게 선수가 아닌 코치로서 KS를 치르고 있는 2011년의 소감을 물었다. 답변은 “지금 당장이라도 경기에 나갈 수 있을 것 같다”였다. 보직은 ‘작전코치’지만 마음만은 선수들과 뛰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지금도 그라운드 위에서 함께 숨쉬고 있다. 3루 옆에서 벤치사인을 선수들에게 전달하고, 타구를 판단해 주자의 진루를 돕고 있다. 아직 서툴지만 큰 경기에서 작은 실수는 패배로 이어지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집중하고 있다.
선수들을 독려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그 대상은 주전선수에 국한되지 않는다. 어느 누구보다 마음을 잘 이해하는 백업선수들에게 “기회가 언제 올지 모르니 벤치에서도 긴장의 끈을 놓지 마라”고 조언했다. 김 코치는 “큰 경기에서 긴장 안하는 선수는 없다. 하지만 준비를 하고 있으면 기회가 왔을 때 잘할 수 있다”며 “개인적으로 이영욱, 조동찬(사진)과 같은 백업선수가 대타든 대수비든 나가서 중요할 때 한 방을 쳐줬으면 좋겠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재미있는 것은 이영욱이 김 코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2차전 8회 대수비로 나가 결정적인 호수비로 팀을 구했다는 점. 이제 남은 것은 조동찬. 김 코치는 “두 선수뿐 아니라 내 뒤를 이어 가을사나이가 될 선수가 가능한 많이 나오면 좋겠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