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수룩한 수염은 그대로지만 트렌치코트에 넥타이까지 한 말끔한 차림이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고개를 숙이며 정중히 인사하는 모습에선 뭔가 부탁할 일이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최근 일본프로야구 오릭스에서 방출된 뒤 한국시리즈 3차전이 벌어진 문학구장을 깜짝 방문한 박찬호(38) 얘기다.
올해 박찬호는 일본 무대에 진출해 1승 5패 평균자책 4.29의 초라한 성적을 남겼다. 국내 복귀를 희망했지만 제도상의 어려움과 야구계의 부정적인 반응에 부닥쳤다. 구본능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는 “일본에서 은퇴하는 게 낫다”는 사견을 밝히기도 했다.
이날 경기 시작 전 문학구장을 방문한 박찬호는 처음엔 “미안하다. 오늘은 이야기하기 어렵다”며 조심스러운 반응이었다. 하지만 요청이 거듭되자 짤막한 답변을 남겼다. 그는 “언젠가 한국 선수들과 뛸 수 있기를 꿈꿔왔다”며 국내 복귀 희망을 피력하는 한편 “어디에서든 좋은 일이 있을 수 있다. 가능하리라는 바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제9구단 NC의 인스트럭터설에 대해서는 “나는 아직 선수다”라고 선을 그었다.
박찬호는 SK 이만수 감독대행, 삼성 류중일 감독, 구본능 총재 등 야구 관계자들을 만나 자신의 뜻을 전했다. 대학 선배로 평소 친분이 깊은 이 대행에게는 속내를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행은 “박찬호가 국내 복귀 절차의 까다로움을 안타까워했다. 외국인 선수도 바로 뛸 수 있는데 국가대표로 국위 선양도 하고 외환위기 때 국민께 힘도 드린 자신이 왜 안 되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박찬호는 “한국에서 뛰면 관중도 많이 오고 팬들도 기뻐할 것이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찬호는 8월 신인 드래프트에 참여하지 않아 박찬호만을 위한 특별법 제정 없이는 내년 복귀가 어려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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