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루트’ 개척에 나섰던 박영석 대장과 신동민 강기석 대원이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에 영원히 안겼다. 험난한 산세, 수시로 돌변하는 기상과 잦은 눈사태로 히말라야 8000m급 고봉 중 가장 등정이 어려운 것으로 악명이 높은 안나푸르나 전경. 동아일보DB
박영석 대장을 가까이서 지켜봐 온 지인들은 하나같이 “이번에도 틀림없이 살아 돌아올 것이라 기대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대장은 소식이 끊긴 18일 이후 12일째인 30일까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의 무사귀환을 기도했던 산악인과 지인들의 회고를 정리했다. ○ 이인정 대한산악연맹 회장
영석이는 1980년 마나슬루 원정대가 등정에 성공한 뒤 귀국해 카퍼레이드를 하는 것을 보고 산악인이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당시 마나슬루 원정대장은 나였다. 영석이는 유명해지기 위해 산에 오르는 게 아니었다. 산이 좋아 오르다 보니 숱한 기록을 세우게 됐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유명해졌다. 영석이는 산에서 죽음으로써 영원히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번 수색은 종결하지만 날이 풀리면 영석이를 찾으러 다시 안나푸르나를 찾을 것이다.
○ 산악인 엄홍길 씨
죽을 고비를 수도 없이 넘긴 후배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영석이는 산 하나를 등정하면 내려오는 도중에 다음 목표를 얘기할 정도로 끊임없이 도전하고 탐험하던 산악인이었다. 나는 한때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던 동생을 잃었고 대한민국은 산악계의 큰별 하나를 잃었다.
○ 여성 산악인 오은선 씨
영석이 형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집념의 사나이’다. 포기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등반할 때는 예상하지 못한 돌발 상황이 최소한 세 가지는 벌어진다는 각오를 하고 시작하라던 영석이 형의 가르침을 지금도 늘 가슴에 새기고 있다. ○ 만화가 허영만 씨
2001년 7월 히말라야 K2봉 등정에 따라 나선 것이 계기가 돼 10년 넘게 박 대장과 인연을 이어왔다. 겁이 없었고 주저함이 없는 사람이었다. 나이는 한참 어린 후배지만 박 대장한테서 배우려고 애썼던 게 있다. 한번 약속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킨다는 것이다. ○ 익스트림스포츠 칼럼니스트 송철웅 씨
동국대 산악부였던 영석이가 83학번, 국민대 산악부였던 내가 82학번으로 산악부 교류를 하다 처음 알게 돼 1990년대 중반부터 가까워졌다. 영석이는 산에 가지 않고는 못 사는 사람이었다. “산에 있지 않으면 불편하다. 도시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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