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 사나이들 안나푸르나에 잠들다]산악인-지인들 “포기 모르던 사람이었는데…”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31일 03시 00분


아버지의 꿈이 묻힌 곳, 아들은 소리죽여 흐느꼈다

‘코리안 루트’ 개척에 나섰던 박영석 대장과 신동민 강기석 대원이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에 영원히 안겼다. 험난한 산세, 수시로 돌변하는 기상과 잦은 눈사태로 히말라야 8000m급 고봉 중 가장 등정이 어려운 것으로 악명이 높은 안나푸르나 전경. 동아일보DB
‘코리안 루트’ 개척에 나섰던 박영석 대장과 신동민 강기석 대원이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에 영원히 안겼다. 험난한 산세, 수시로 돌변하는 기상과 잦은 눈사태로 히말라야 8000m급 고봉 중 가장 등정이 어려운 것으로 악명이 높은 안나푸르나 전경. 동아일보DB
박영석 대장을 가까이서 지켜봐 온 지인들은 하나같이 “이번에도 틀림없이 살아 돌아올 것이라 기대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대장은 소식이 끊긴 18일 이후 12일째인 30일까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의 무사귀환을 기도했던 산악인과 지인들의 회고를 정리했다.

○ 이인정 대한산악연맹 회장


영석이는 1980년 마나슬루 원정대가 등정에 성공한 뒤 귀국해 카퍼레이드를 하는 것을 보고 산악인이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당시 마나슬루 원정대장은 나였다. 영석이는 유명해지기 위해 산에 오르는 게 아니었다. 산이 좋아 오르다 보니 숱한 기록을 세우게 됐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유명해졌다. 영석이는 산에서 죽음으로써 영원히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번 수색은 종결하지만 날이 풀리면 영석이를 찾으러 다시 안나푸르나를 찾을 것이다.

○ 산악인 엄홍길 씨

죽을 고비를 수도 없이 넘긴 후배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영석이는 산 하나를 등정하면 내려오는 도중에 다음 목표를 얘기할 정도로 끊임없이 도전하고 탐험하던 산악인이었다. 나는 한때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던 동생을 잃었고 대한민국은 산악계의 큰별 하나를 잃었다.

○ 여성 산악인 오은선 씨

영석이 형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집념의 사나이’다. 포기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등반할 때는 예상하지 못한 돌발 상황이 최소한 세 가지는 벌어진다는 각오를 하고 시작하라던 영석이 형의 가르침을 지금도 늘 가슴에 새기고 있다.

○ 만화가 허영만 씨


2001년 7월 히말라야 K2봉 등정에 따라 나선 것이 계기가 돼 10년 넘게 박 대장과 인연을 이어왔다. 겁이 없었고 주저함이 없는 사람이었다. 나이는 한참 어린 후배지만 박 대장한테서 배우려고 애썼던 게 있다. 한번 약속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킨다는 것이다.

○ 익스트림스포츠 칼럼니스트 송철웅 씨


동국대 산악부였던 영석이가 83학번, 국민대 산악부였던 내가 82학번으로 산악부 교류를 하다 처음 알게 돼 1990년대 중반부터 가까워졌다. 영석이는 산에 가지 않고는 못 사는 사람이었다. “산에 있지 않으면 불편하다. 도시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카트만두=이원홍기자 bluesky@donga.com  
이종석기자 w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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