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의 뜻인 걸까. 아침부터 까마귀가 몹시 울었다. 이곳에서 까마귀는 신성한 동물이다. 영혼을 하늘로 인도한다고 여긴다. 영원히 녹지 않는 흰 눈을 쓰고 있는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8091m). 30일 여신의 품속인 해발 4200m의 산기슭. 헬리콥터가 수차례 절벽을 선회한 뒤 내렸다. 가족들은 차가운 돌로 쌓은 제단 앞에 섰다. 돌탑에 꽂힌 장대 위에 수많은 깃발이 바람에 펄럭였다. 산에서 잠든 영혼들이여, 이 장대를 이정표 삼아 하늘로 오르소서. 깃발엔 영혼을 기리는 문구가 새겨졌다. 이곳 사람들은 깃발이 펄럭일 때마다 영혼이 바람을 따라 하늘로 올라간다고 믿는다.
안나푸르나 남벽에서 실종된 박영석 대장(48)과 신동민(37) 강기석 대원(33)의 위령제가 열렸다. 박영석 대장의 동생 박상석 씨, 아들 박성우 씨, 신동민 대원의 부인 조순희 씨, 강기석 대원의 동생 강민석 씨가 차례로 절을 올렸다. 절을 마친 이들은 모두 눈물을 흘렸다. 바람결에 가족들의 염원과 회한이 높고 깊은 봉우리 사이로 흩어졌다. 이제 불러도 더는 대답 없는 이름들이었다.
열 살 연하의 남편을 보내야 하는 신 대원의 부인 조순희 씨는 한때 식사를 거의 못했다. 절을 한 뒤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다. 여성 산악인으로 활동했던 그는 산에서 남편을 만나 산으로 보내야 했다. 10년 전 히말라야 푸모리에서 친구와 함께 산에 오르다 친구가 사망했고 그때 신 대원이 위로하며 사랑에 빠졌다. 그때도 지금도 슬픔은 눈물로 위로를 받는다. 끼니를 거르던 부인은 한국구조대의 유학재 대원이 산에서 내려와 대성통곡을 한 뒤에야 겨우 조금씩 식사를 하는 형편이었다. 구조작업을 하던 이한구 대원이 손목에 감고 있던 팔찌를 꺼내 박성우 씨에게 건넸다. “이거 아버지께서 갖고 있으라고 한 거야. 이제 너에게 줄게.” 아들은 소리 없이 울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이인정 대한산악연맹 회장이 울먹였다. “이제 어떻게 하나….”
가족들은 산에서 내려와 카트만두 시내의 보우다 사원에 들렀다. 이곳에 실종자들의 사진을 놓고 라마식 위령제를 다시 지냈다. 심벌즈처럼 생긴 전통악기 묵찰이 은은히 울려 퍼졌고 승려들은 불경을 외우며 모두를 위로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지상에서 영원히 이별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고통스러웠다. 대한산악연맹은 27일 오후 늦게 가족들에게 수색 중단을 통보했다. 가족들은 서운했지만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절망과 고통을 이겨내야 하는 것은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었다. 이인정 회장은 진정제를 꺼내 들었다. 구조대에게 수색 종결을 지시한 그는 “나는 이제 평생 박영석 얼굴을 똑바로 못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회장은 “박영석을 산에 가지 못하게 하면 그것이 그에게는 죽음이었다”며 “영석이는 산에서 죽음으로써 영원히 살아난 것이다”라고 말했다.
가족들은 대원들을 가슴에 묻었다. 누군가 떠난 사람을 기억하는 한 그는 여전히 살아있다는 말을 했다. 그들은 떠난 이들을 오래도록, 어쩌면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그래서 몸은 떠났지만 그들을 마음속에서 살려낼 것이다. 그들을 왜 일찍 데려갔는지, 차가운 여신은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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