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가 올라왔으면 좋겠네요.” 롯데와 SK의 플레이오프 때 부산 사직구장을 찾은 삼성 전력분석팀 관계자가 했던 말이다. 그는 “타격의 팀인 롯데는 한번 흐름을 타면 걷잡을 수 없다. 하지만 SK는 불펜 야구를 하는 팀이다. 불펜 대 불펜의 대결이라면 우리가 앞설 자신이 있다”고 했다.
# 4차전까지 치른 한국시리즈는 그의 예상대로다. 팽팽한 투수전이 펼쳐진 3차전까지 승패를 가른 건 불펜이었다. 1, 2차전에서는 안지만 권오준 오승환이 버틴 삼성이 신승했다. 3차전에서는 이승호 정대현 정우람 엄정욱이 이어 던진 SK가 2-1로 이겼다. 삼성은 4차전에서는 8-4로 승리하며 3승 1패로 한국시리즈 우승에 1승만을 남겨뒀다.
# 4차전에서는 모처럼 많은 점수가 났지만 두 팀의 희비를 가른 건 역시 불펜이었다. 경기 내용상 SK가 역전할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다. 1-4로 뒤진 4회말 2사 만루에서는 정인욱에게 막혔다. 4-5로 추격한 7회 무사 1, 3루 찬스에서는 안지만의 벽을 넘지 못했다.
반면 SK 이영욱은 7회 최형우에게 홈런을 맞았다. 8회 등판한 박희수는 제구력 난조 끝에 2점을 더 내줬다. 이만수 감독 대행은 경기 후 “그렇게 좋던 박희수가 예전 같지 않더라. 내가 대신 던져주고 싶은 마음이었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 삼성과 SK는 올 시즌 나란히 팀 평균자책 1, 2위를 기록했다. 선발보다는 불펜의 힘이 강한 것도 닮았다. 한국시리즈에서 나타나는 양 팀 불펜의 차이는 바로 피로도 때문이다.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삼성 투수들은 18일간 쉬면서 컨디션을 조절했다. 반면 SK는 KIA와 준플레이오프 4경기에, 롯데와의 플레이오프에선 5경기를 치렀다. 정우람 이승호 등 불펜의 핵이 잇달아 부상을 당한 것도 그런 이유다.
# 모든 것을 떠나 올해 삼성 불펜진은 역대 최강이라고 할 만큼 막강하다. ‘끝판대장’ 오승환은 올해 세이브 기회를 놓친 게 한 번밖에 없다. 54경기에서 1승 47세이브를 올렸고 평균자책은 0.63이다. 오승환에 앞서 나오는 안지만(17홀드) 권혁(19홀드) 정현욱(24홀드) 권오준(11홀드) 등 필승 계투조는 모두 2점대 평균자책을 기록했다. 다른 팀 같으면 당장 마무리 투수로 나서도 될 만큼 좋은 구위를 갖췄다. 한 명이 흔들려도 남은 선수들이 구멍을 메우면 된다. 삼성을 상대로 역전승을 거두기란 사실상 힘들다.
# 야구는 ‘투구 놀음’이라는 말이 있다. 정규시즌에서는 선발이 강한 팀이 유리하다. 133경기를 치르려면 선발이 많은 이닝을 소화해줘야 한다. 반면 포스트시즌 같은 단기전에서는 불펜이 강해야 한다. 매 경기가 결승전이기에 힘 좋고 구위 좋은 쪽이 유리하다. 제아무리 이대호(롯데)라 해도 특급 투수들의 집중 견제를 받으며 기회 때 안타를 쳐내기는 쉽지 않다. 1984년 최동원(롯데)처럼 4승을 혼자서 책임지고, 2003년 정민태(현대)처럼 선발로 3승을 거두는 슈퍼 에이스가 아니라면 단기전은 불펜 싸움이다.
올해 마지막 경기가 될지도 모르는 양 팀의 5차전은 31일 오후 6시 잠실구장에서 열린다. 삼성은 1차전에 중간으로 등판했던 차우찬을, SK는 고든을 선발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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