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랑 골프장서 싸웠다. 그러자, 어머니가 골프장서 쫓겨났다. 시도 때도 없는 어머니의 잔소리. 어릴땐 그 잔소리가 듣기 싫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나의 코치이자 멘토이자 친구. 어머니의 잔소리가 없었다면, 골프 선수 배상문도 없었겠죠?
배상문(25·우리투자증권)의 상승세가 거침없다. 올 초 세계랭킹 100위 안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지만 4일 현재 31위까지 끌어올렸다. 지난달 31일 귀국해 고향 대구에 들러 휴식을 취한 뒤 3일 서울로 올라온 배상문을 경기도 용인의 골프연습장에서 만났다. 무섭게 성장하며 월드스타를 꿈꾸고 있는 배상문과 일본투어에서의 뒷얘기, 그리고 자신을 지켜주는 어머니에 대해 허심탄회한 얘기를 나눴다.
● “이글 할 테면 해봐라”
지난 달 30일 끝난 미나비 ABC챔피언십 얘기부터 꺼냈다. 연장 6번째 홀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지만 아쉽게 우승을 놓쳤다. 일본투어 3승으로 기세가 하늘을 찔렀는데 혹시 맥이 끊기는 건 아닐지 걱정도 된다. 배상문의 대답은 시원했다. “또 우승할 수 있다. 걱정 마십쇼.”
6홀까지 갔던 연장 승부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2타 앞선 채 먼저 경기를 끝냈다. 고이치로 가와노가 마지막 18번홀에서 이글 기회를 만들어 둔 것을 봤다. 그때까지만 해도 ‘해볼 테면 해봐라. 연장 가서 이겨 줄 테니’라는 마음이었다. 연장전에 가더라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설마했던 가와노의 이글 퍼트가 홀 안으로 떨어졌고 연장전에 들어갔다. 1,2,3번째 연장까지, 모두 배상문에게 우승 기회가 있었다. “드라이버 샷을 너무 잘 쳤다. 파5 홀이어서 아이언으로도 2온이 가능한 거리였지만 이상하게 아이언이 잘 맞지 않았다. 저는 3번이나 기회를 놓쳤고, 반면 가와노는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그렇게 2홀이 더 흘렀고 6번째 홀까지 왔다. “가와노가 너무 잘했다. 어려운 퍼트를 잘 막으면서 따라오더니 급기야 6번째 홀에서 버디를 기록했다. 저는 버디를 놓치면서 우승을 날렸다. 아쉬웠지만 후회는 없다.”
만약 이 대회 우승컵까지 거머쥐었다면 배상문은 작년 김경태의 기록을 뛰어넘는 또 하나의 신화를 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래서 더 아쉽다.
김경태에 이어 올해 배상문까지. 일본 골프계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초상집이다. 일본오픈을 연거푸 한국선수에 빼앗겼고, 상금왕도 내줄 판이다. 배상문은 일본의 위기감을 직접 피부로 느끼고 있다. “완전히 한국판이다. 한국선수들을 만만하게 보는 선수도 없어졌다. 일본선수들이 한국선수들을 통해 많이 자극 받는 것을 느낀다. 또 한국선수가 우승하면 협회 직원들의 표정에서도 그런 걸 읽을 수 있다. 제가 일본오픈에서 우승했을 때 일본골프협회 직원들의 표정이 생각난다. 굳은 표정으로 축하해주는 데 그다지 축하해주는 느낌을 못 받았다.”
한국오픈에서 일본선수가 우승했더라도 우리의 반응 역시 비슷할 듯 하다. 그것도 2년 연속 빼앗겼다면 그 심정은 속이 새까맣게 탔을 게 분명하다.
인기도 수직상승이다. “지나가는 저를 보면서 팬들끼리 ‘배상∼, 배상∼’이라고 소곤대는 걸 자주 본다. 또 작년보다 훨씬 많은 팬들이 사인을 요청한다. 일본에서 인기가 높아진 걸 실감한다.”
● “어머니의 잔소리는 약이다”
배상문에게 어머니는 특별한 존재다. 사실 두 모자(母子) 사이엔 에피소드도 많았다. 2년 전엔 어머니의 행동 때문에 한국프로골프협회로부터 대회장 출입 정지라는 징계까지 받았다. 또 간혹 코스 내에서 서로 언성을 높이며 화를 내는 모습도 보였다. 이런 모자는 가끔 눈총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어머니가 있었기에 지금의 배상문이 존재한다. “어떤 말로도 표현이 되지 않는다. 어머니는 제게 코치이자 친구, 멘토다. 거의 모든 역할을 다 하시니까. 또 제게는 어머니의 잔소리가 약이다. 독이 된 적은 한 번도 없죠. 가끔 약이 되지 않을 때도 있지만 스스로 약이 되는 것만 들으려고 노력한다.”
솔직히 듣기 싫을 때도 많았다고 했다.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는 어머니의 잔소리가 싫었다. “이제 조금 철이 든 것 같다. 어머니의 잔소리가 약으로 들리니까요.” 배상문은 “어머니가 계시지 않았더라면 나 역시 없었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집에 돌아 와서도 웃긴 일이 있었다고 했다. “집에 와서 어머니께 ‘아들이 우승 많이 하니까 좋나?’(대구사투리)라고 물었더니 어머니가 ‘이놈아 지금까지 너 때문에 고생한 게 얼만데, 우승하니까 좋지. 요즘은 축하 전화 받느라 더 힘들어’라며 웃으셨다. 그런 어머니의 웃음을 앞으로도 더 많이 보고 싶다.”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한국을 찾는 이유도 어머니 때문이다. “억척스럽게 행동하시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찡할 때가 많다. 그럴 때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모자의 애틋한 정을 느낄 수 있다.
● “폼이고 뭐고 신경 안 썼다”
국내에서 활약하던 시절. 배상문의 이름 뒤에는 ‘국내용’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2008, 2009년 2년 연속 상금왕에 올랐지만 유독 해외투어에만 나가면 성적이 나빴다. 일본투어 첫 우승으로 국내용이라는 꼬리표를 떼기는 했지만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배상문에게 다시 스포트라이트가 쏠리게 된 계기는 두 번째 우승을 안겨준 도카이 클래식이었다. 이 때도 우승이 쉽지는 않았다. “마지막 18번홀. 머릿속에는 ‘우승’이라는 두 글자 밖에 없었다.”
18번홀 티 그라운드에 올라섰을 때 타다히로 다카야마와 7언더파로 동타였다. 그런데 앞 조에서 경기하던 타다히로가 티샷 실수로 공이 러프에 빠졌고 두 번째 샷으로 그린에 올리지 못했다. “18번홀 티샷을 준비하면서 그 모습을 봤다. 그래서 캐디에게 ‘저 선수 세 번째 샷이다’고 말했더니 ‘알고 있다’고 했다.”
기회가 온 것이다. 타다히로는 잘 해야 파 세이브였고 배상문에게는 버디 기회가 있었다. “그 순간 무조건 이기고 싶었다. 그래서 드라이버 샷을 꼭 페어웨이에 떨어뜨려야한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폼이고 뭐고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티샷했다. 페어웨이로 잘 갔다.”
타다히로는 보기로 홀아웃했다. 파만 해도 우승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핀이 그린 왼쪽에 있었는데 무조건 가운데만 보고 쳤다. 2퍼트만 해도 되니까 안전하게 쳤다. 그런데 너무 안전하게 쳤다. 홀까지 거리가 꽤 됐다. 2발자국 정도 됐다. 예전 같았으면 퍼트하기 전 생각도 많고 긴장했을 텐데 편하게 쳤다. 그게 홀 안으로 떨어지면서 우승이 결정됐다. 그 순간 옆에 있던 캐디가 가슴을 치면서 내게 ‘정말 심장이 강하구나’라고 말했다. 제 생각에도 심장이 많이 강해진 것 같다.” 이 우승이 배상문을 바라보는 시각을 180도 바꿔 놨다.
● Who is Bae Sang Moon?
1986년 대구 출생/180cm 78kg/대구대 출신. 우리투자증권, 캘러웨이 소속/ 2008, 2009년 한국프로골프투어 상금왕(2회)/ 2011년 일본프로골프투어 상금랭킹 1위(1억4358만2708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