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일전을 치렀던 철권이 스러졌다. 전설의 한 페이지에 마침표가 찍혔다. 전 세계복싱협회(WBA) 헤비급 챔피언 조 프레이저가 7일 간암으로 숨졌다. 향년 67세.
프레이저의 생애는 살아있는 전설 무하마드 알리(69)의 생애와 떼어내 설명할 수 없다. 가난한 농장 인부였던 프레이저는 프로복싱에 입문한 뒤 폭풍 같은 질주를 계속했다. 1971년 3월 8일 미국 뉴욕 매디슨스퀘어가든. 26전 전승에 22KO승을 기록 중인 그는 WBA 헤비급 챔피언 2차 방어에 나섰다. 상대는 31승(25KO) 무패의 무하마드 알리였다. 알리는 베트남전 징집을 거부한 뒤 1967년 챔피언을 박탈당했다. 4년 만에 정상에 재도전 하는 순간이었다.
프레이저는 1970년 지미 엘리스에게 도전해 5회 KO승을 거두며 챔피언이 됐다. 반전운동과 흑인 인권운동에 앞장섰던 알리는 프레이저를 '고릴라' 또는 '백인의 하수인'으로 놀려댔다. 알리는 이 대결에 인종과 인권 문제를 끌어들이며 경기 외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이로 인해 알리와 프레이저는 평생 원수가 됐다.
무패의 철권들이 맞선 당시의 승부는 '세기의 대결'로 명명됐다. 지난 100년간 가장 유명한 경기였다. 3억 명이 이 경기를 TV로 지켜봤다. 프레이저를 키운 명 트레이너 에디 푸치는 알리가 오른손 올려치기를 하기 전 주먹을 아래로 길게 떨어뜨리는 습관을 발견했다. 알리가 오른손을 내리는 순간 번개 같은 레프트 훅을 날릴 것을 요구했다. 프레이저의 레프트훅에 걸린 알리는 15회에 다운됐다. 프레이저의 만장일치 판정승이었다. 그러나 프레이저는 1974년 뉴욕, 1975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알리에게 잇달아 패했다. 프레이저는 이후 또 다른 전설 조지 포먼(62)에게 두 번 패한 뒤 은퇴했다. 통산 32승(27KO) 1무 4패.
가난했던 프레이저는 손에 아버지의 낡은 넥타이를 감고 버려진 스타킹과 헌 옷을 채운 백을 두드렸다. 영화 '록키'에서 주인공이 푸줏간에 걸린 동물을 두드리며 주먹을 단련하던 장면은 프레이저의 실제 삶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졌다. 프레이저는 '록키'에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 그는 어렸을 때 농장에서 덩치 큰 돼지를 곯리다 화가 난 돼지에 쫓겨 넘어지면서 왼손을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왼팔은 조금 굽었다. 그는 평생 왼팔을 제대로 펴지 못했다. 그러나 그 왼팔로 세계를 정복했다.
프레이저는 1964년 도쿄 올림픽에 예비 선수로 참가했다가 주전 선수가 주먹을 다치는 바람에 대신 출전했다. 왼손 엄지가 부러졌지만 투혼을 발휘하며 금메달을 땄다. 그는 전형적인 헝그리 복서로서 주먹 하나로 출세했지만 경쟁자인 알리나 포먼에 비해 자신의 명성을 쌓는데 서툴렀고 재산도 크게 불리지 못했다. 알리와는 평생 말다툼을 그치지 않았지만 최근엔 "알리에게 더 이상 악감정은 없다"며 알리를 용서했다. 알리도 그의 쾌유를 빌며 간절히 기도했다. 두 사람은 평생 다퉜지만 죽음 앞에서는 서로 화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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