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감독 하기 힘든 세상이다. 성적을 내지 못하면 아웃이다. 이긴다고 만사 편한 건 아니다. 그냥 이기는 게 아니라 재미있고 화끈하게 이겨야 한다. 모그룹 이미지도 신경을 써야 한다.
김성근 전 SK 감독(69)이 대표적이다. 그는 지난 4년간 3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지만 시즌 중 재계약과 관련된 갈등 끝에 해임됐다. 시즌이 끝난 뒤 자진 사퇴하겠다고 밝혔으나 구단은 이튿날 해고를 통보했다. 김 전 감독의 독특한 야구 색깔이 구단과 융화하지 못한 결과다.
포스트시즌이 한창인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오치아이 히로미쓰 주니치 감독(58)은 순위 경쟁이 치열하던 9월 말 구단으로부터 올 시즌을 끝으로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다.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7년간 저팬시리즈 우승 1회, 센트럴리그 우승 3회를 이끈 명장이었기에 팬들에게는 상당한 충격이었다. ○ ‘일본판 김성근’의 도전과 응전
김 전 감독과 달리 오치아이 감독은 지휘봉을 놓지 않았다. 시즌 후 퇴임이 확정된 감독 아래에서 선수들은 오히려 똘똘 뭉쳤다. 8월 중순까지 5위에 머물던 주니치는 9월 이후 급상승세를 타더니 한때 10경기까지 뒤졌던 선두 야쿠르트를 넘어 결국 센트럴리그 1위를 차지했다. 6일 끝난 야쿠르트와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에서도 승리해 저팬시리즈 진출을 확정지었다.
오치아이 감독은 요즘 일당을 받는다. 10월 31일자로 계약이 끝났기 때문이다. 연봉 3억 엔(약 43억 원)을 받았던 그는 시리즈가 끝날 때까지 하루에 180만 엔(약 2580만 원)을 받는다.
퍼시픽리그 챔피언 소프트뱅크와의 저팬시리즈(7전 4선승제)는 12일 시작된다. 4차전에서 끝난다 해도 16일까지는 일당이 보장된다. 저팬시리즈에서 우승한다면 오치아이 감독으로서는 처음으로 리그 우승과 저팬시리즈 통합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 이것이 바로 야구의 세계다
“이기는 게 최고의 팬 서비스”라고 공언해 왔던 오치아이 감독의 퇴임은 어떤 야구가 좋은 야구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그를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은 ‘오레류(オレ流)’다. 나만의 길을 간다는 뜻이다.
선수 시절부터 반골 기질을 보였던 오치아이 감독은 누가 뭐라 하든 자신의 야구를 해 왔다. 2007년 니혼햄과의 저팬시리즈 5차전에서는 8회까지 퍼펙트게임을 하고 있던 선발투수 야마이 다이스케를 9회 이와세 히토키로 교체했다.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때는 소속팀 선수 차출에 반대해 비난을 샀다. 팬 감사 이벤트에도 불참하기 일쑤였다.
승리는 많았지만 팬들은 오치아이 야구에 피로를 느꼈다. 2008년 243만 명이던 홈 관중은 지난해 213만 명으로 줄었다. 특급 선수 못지않은 고액 연봉도 구단 처지에선 큰 부담이었다. 이에 구단은 감독 경질이라는 강수를 뒀다. 시라이 분고 구단주로부터 직접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은 오치아이 감독은 “이게 바로 야구의 세계다”라며 담담히 퇴임을 받아들였다.
오치아이 감독과 김성근 전 감독은 모두 자신만의 확실한 야구 색깔을 갖고 있었다. 성적은 좋았지만 구단과의 마찰은 피할 수 없었다. 2007년 양국 프로리그 챔피언 자격으로 한일 챔피언십시리즈에서 만났던 두 명장은 공교롭게 같은 해 유니폼을 벗게 됐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오치아이 히로미쓰 감독 ::
△생년월일: 1953년 12월 9일 △투타: 우투우타 △포지션: 1, 2, 3루수 △프로 경력: 일본 롯데(1979∼86년) 주니치(1987∼93년) 요미우리(1994∼96년) 니혼햄(1997∼98년) △통산 타율 0.311, 510홈런, 1564타점 △주요 기록: 수위타자 5회, 홈런왕 5회, 타점왕 5회, 최우수선수 2회 △지도자 성적: 8년 연속 A클래스(3위 이내), 리그 우승 4회, 저팬시리즈 우승 1회. 통산 629승 30무 491패(승률 0.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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