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지난해 한국시리즈(KS)에서 SK와 4번 싸워 4번 모두 지고 큰 생채기를 입었다. 이 완패의 영향으로 사령탑이 전격적으로 경질됐고, 사장·단장의 구단 경영진도 교체됐다. 이 뿐 아니다. 지난해 말 선수단 워크숍을 통해 주장 또한 바뀌었다. 그러나 사장·단장·감독은 모두 ‘초짜’여도 주장만큼은 경력자였다. 2005년과 2006년 삼성이 2년 연속으로 페넌트레이스와 한국시리즈를 통합 우승했을 당시 주장으로 큰 역할을 한 포수 진갑용(37)이었다.
올해 KS에서 삼성은 SK와 다시 맞붙어 4승1패로 설욕에 성공했다. 류중일 감독을 비롯한 팀 내부에서는 물론 투수전 양상이었던 이번 시리즈를 유심히 지켜본 외부 전문가들까지 이구동성으로 진갑용의 영리한 투수 리드를 높이 평가했다. 비단 투수 리드뿐이 아니었다.
시즌 내내 진갑용은 젊은, 그래서 갈팡질팡할 수도 있는 후배들을 때로는 호통치고, 때로는 다독이면서 잡음 없이 이끌었다. 벌써부터 내년 시즌 또 한 차례의 우승을 장담하고 있는 류 감독이나, 프런트 모두 진갑용의 주장 연임을 은근히 바라고 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는 도리질을 친다. 9일 마무리훈련지인 일본 오키나와로 출발한 진갑용은 “내년에는 절대 안 맡는다”고 말했다. 그가 내년 주장을 고사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올시즌 후 취득한 프리에이전트(FA)라는 신분적 제약이 근거다. 보통 FA는 원 소속구단과 계약하든, 타 구단으로 이적하든 계약 첫 해에는 ‘은둔’하는 경향이 있다. 또 한 가지 이유에 대해 그는 “내가 주장을 맡아서 공교롭게도 3번씩이나 우승했는데, 주장 때문에 우승한 건 아니다. 하지만 내 뒤로 주장을 맡을 선수들은 두고두고 부담을 느낄 수 있으니 이쯤에서 나도 주장을 그만하는 편이 옳다”고 밝혔다. 박수 칠 때 떠나고 싶은 속마음의 표현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