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크’라는 별명을 지닌 강인한 눈매의 사나이가 그의 품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5월 제5의 메이저골프대회라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최경주(41·SK텔레콤)와 캐디 앤디 프로저(59·스코틀랜드)였다. 승리의 환희를 나눴던 최경주는 11일 자신의 재단 행사에서 다시 한 번 눈시울을 붉히며 프로저를 껴안았다. 이번에는 헤어짐의 아쉬움 때문이었다.
최경주는 17일 호주 멜버른에서 열리는 프레지던츠컵을 끝으로 프로저와 작별하기로 했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따른 체력 부담에 시달린 프로저의 고충을 헤아렸기 때문이다. 최경주의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는 IMG코리아 관계자는 “당초 지난해 말 프로저가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밝혔는데 1년만 더 해달라고 간청해 연장됐던 것”이라고 말했다.
최경주는 행사장에서 “내게 앤디는 아내이자 형님 같은 분이다. 내가 흔들리면 유머와 격려로 늘 힘을 준다. 멋있게 헤어질 수 있게 돼 감사하다”며 감격스러워했다. 또 그는 “그와 함께했던 많은 일이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프로저는 “좋은 시간이었다”고 화답했다.
이들의 인연은 8년 전인 2003년 9월 유럽투어 독일 마스터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캐디를 자주 교체했던 최경주는 이 대회에서 프로저를 처음 만난 뒤 우승까지 한 것을 계기로 9년째 한 배를 타고 있다. 닉 팔도, 콜린 몽고메리 같은 거성들의 가방을 멨던 프로저는 오랜 경험을 살려 최경주의 특급 도우미로 PGA투어 통산 7승을 합작했다. 프로저는 1987년 팔도가 브리티시오픈에서 우승했을 때 도움을 줬으며 팔도가 1989년 마스터스 연장전에서 스콧 호크를 꺾고 정상에 섰을 때도 가방을 멨다.
프로저는 최경주의 몸이 무거워 보이면 평소보다 한 클럽 길게 권하거나 버디가 없으면 “파게임을 하고 있는데 뭔 걱정이냐”며 어깨를 쳐주는 등 세심한 배려로 유명했다. 최경주 덕분에 한국을 18차례나 방문한 프로저는 갈비와 불고기를 즐기게 됐다.
최경주는 프로저에 대해 “때론 고집불통이다. 그래서 더 도움이 된다, 예스맨이었다면 오랜 세월을 함께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고마워했다. 최경주는 연로한 프로저를 위해 캐디백을 가볍게 했고 그가 힘들어하면 과감하게 휴가를 주며 배려했다. 큰 비용이 드는 치아 교정을 할 때는 금전적 도움을 줬다.
최경주는 프로저를 대신해 2002년 컴팩클래식에서 자신의 PGA투어 첫 승을 달성할 때 캐디였던 스티브 언더우즈를 영입했다. 팀 클라크의 캐디였던 언더우즈와는 올 시즌 2개 대회에서 호흡을 맞춰보기도 했다. 프로저는 유럽에서 큰 대회가 열리면 단발성 캐디로 나설 계획이다.
올 시즌 PGA투어에서 상금 4위(443만 달러)에 오르며 전성기를 구가한 최경주와 캐디 프로저. 박수 칠 때 헤어진 이들은 “마음속에선 영원한 동반자로 응원을 보내겠다”며 악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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