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괌과 사이판 등에서 리조트를 운영하는 종합 리조트 기업) 괌 주최로 13일 열린 괌 국제마라톤대회는 처음엔 그저 취재 대상이었다. 그런데 황 감독이 괌에 온다는 거였다. 5km, 10km, 하프마라톤으로 구성된 이 대회에서 5km 부문에 출전까지 한다고 했다.
황영조가 누군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지옥의 레이스 끝에 마라톤 금메달을 따낸 ‘몬주익의 영웅’이 아닌가.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PIC 괌 마라톤 주최 측에서 황 감독을 특별 초청한 것이다.
한국 마라톤의 영웅과 나란히 달려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절대 놓칠 수 없는 기회다 싶었다. 생애 첫 마라톤 대회 출전은 이렇게 이뤄졌다.
해가 뜨면 너무 더운 탓에 마라톤 대회는 오전 5시에 시작됐다. ‘탕’ 하는 출발 총성과 함께 1500여 명의 레이스가 시작됐다. 앞으로 달려 나가려 하자 황 감독이 손을 잡아끌며 제지했다. “천천히 뛰라”는 거였다. 황 감독은 “아마추어가 선수처럼 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여유롭게 즐기는 게 최고”라고 했다.
대회 참가자들은 남녀노소 각양각색이었다.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밀면서 뛰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달리기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 황 감독은 “한국에선 5km, 10km를 인정하지 않는다. 풀코스 아니면 안 된다는 거다. 하지만 중요한 건 ‘펀 런(Fun Run·재미있게 달리기)’이다. 이 사람들을 보라. 우리나라에도 이런 대회가 많이 열려야 한다”고 말했다.
천천히 달리고 있는 황 감독 옆으로 한 선수가 휙 지나갔다. 지난달 열린 하이서울마라톤(서울시 동아일보 스포츠동아 공동 주최) 남자 10km 우승자인 김창원 씨(33)였다. 아프리카 부룬디 출신으로 한국에 귀화한 마스터스 최강자 김 씨는 PIC 괌의 초청으로 이 대회 하프 부문에 참가했다.
마침내 골인. 기록은 35분57초였다. 5km 참가자 838명 가운데 405위, 남자 출전자 439명 가운데선 260위. 더위를 식혀 주는 비가 내리는 가운데 뭔가를 해냈다는 성취감까지 섞여 기분이 그렇게 상쾌할 수 없었다. 황 감독이 말했다. “뛰고 난 뒤 여유가 있고 기분이 좋아야 제대로 즐긴 겁니다. 오늘 달린 5km는 말 그대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보약입니다.” 머나먼 괌까지 와서 보약 한 첩 제대로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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