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기자. 딸 둘이라고 했죠. 절대로 운동시키지 마세요. 혹시 주위에 미운 사람 있으면 애들 골프 시키라고 권유해 보고….”
아버지의 한숨은 깊어만 갔다. 프로골퍼인 두 딸 걱정에 폭음이 계속되면서 덜컥 통풍까지 걸렸다. 왼쪽 발바닥이 퉁퉁 부어 신발을 제대로 신을 수 없었다. 맨발에 슬리퍼가 눈에 들어왔다. “발목을 잘라버리고 싶을 정도의 아픔은 애들이 겪을 마음고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얼마 전 만난 박희영(24·하나금융)의 아버지 박형섭 씨(50)였다. 테니스 선수 출신으로 경기고와 서울대 체육교육과를 나온 박 씨는 대림대 사회체육과 교수로 골프 베스트 스코어는 남서울CC에서 기록한 67타. 그의 부친 박길준 옹(83)은 체조(링) 선수로 태극마크를 달았으며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와 동아대 학장 등을 역임한 체육학계 원로로 싱글 골퍼였다. 박희영의 외할아버지인 고 한정호 씨는 한양CC클럽 챔피언 출신으로 핸디캡 5의 고수였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11세 때 골프를 시작한 박희영은 타고난 유전자(DNA) 덕분에 이름을 떨쳤다. 국가대표를 거쳐 17세 때인 2004년 아마추어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하이트컵에서 우승했다. 이듬해 프로로 전향해 최나연을 제치고 신인상을 수상했다. 국내 무대가 좁았던 그는 2008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세계의 벽은 높았다. 4년이 다 되도록 무관에 그쳤다. 좌절 끝에 박희영은 일본 투어에 눈을 돌려 퀄리파잉스쿨을 수석 합격했지만 여기서도 적응에 실패했다. 박형섭 씨는 1등만을 기억하는 스포츠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한숨짓는 큰딸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가슴은 무너져갔다.
육상(멀리뛰기) 선수였던 동생 박주영(21)은 언니 응원을 다니다 중 2때 골프에 입문했다. 지난해 KLPGA 투어에 데뷔한 그는 성적이 신통치 않아 출전권을 놓쳤다. 지난해 말 시드전 본선에서 1타 차로 투어 카드를 되찾는 데 실패했다. 그런 막내딸 곁에는 아버지가 있었다.
그 아버지가 21일 다시 눈물을 흘렸다. 박희영이 LPGA투어 CME그룹 타이틀홀더스에서 합계 9언더파로 트로피를 안는 모습을 TV로 지켜볼 때였다. 시즌 마지막 대회에서 투어 데뷔 4년 만이자 96번의 도전 끝에 첫 승을 따냈다. 우승상금은 50만 달러(5억7000만 원)로 지난주까지 벌었던 35만1781달러(4억 원)보다 많았다.
박희영도 “많은 사람이 그동안 왜 우승이 없었냐고 물었다. 이제 나도 대답할 수 있다. 꿈이 이뤄졌다”며 울먹였다. 철부지 딸은 오랜 시련 속에 철이라도 든 듯했다. “너무 오래 기다려주신 아버지께 감사드려요. 내일부터 동생이 무안에서 내년 시즌 출전권이 걸린 시드전 본선에 나가는 데 동기 부여가 됐으면 좋겠어요.”
프로골퍼인 자매는 집을 비울 때가 많다. 2년 전 모처럼 가족사진을 찍은 박희영(가운데)과 동생 주영(오른쪽), 아버지 박형섭 씨의 표정이 밝기만 하다. 박희영은 체조 국가대표를 지낸 할아버지와 테니스선수 출신 아버지의 DNA를 물려받아 정교함과 파워를 겸비해 스윙의 교과서로 불렸다. JNA 제공박형섭 씨는 “큰일을 해냈다. 큰 의미가 있는 우승이다. 희영이 골프 인생은 새 전기를 맞게 됐다”며 기뻐했다.
박희영은 지난주 멕시코 대회에 출전했다 테킬라 한 병을 사 갖고 왔다. “축배를 들고 싶다”는 그의 머릿속에는 아버지와의 건배 장면이 그려졌을 것 같다.
한편 코리아 군단은 올 시즌 통산 100승의 이정표를 세우기는 했어도 2000년(2승) 이후 가장 적은 3승을 합작하는 데 그쳤다. 혼자 7승을 거둔 청야니(대만)의 독주, 1승도 못 올린 신지애의 부진, 길어진 코스 전장 등이 그 이유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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