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서 보여주고 싶어요, 살아난 박지은을…”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29일 03시 00분


KLPGA 출전권 획득, 내년부터 한국서 뛰어
골퍼 아닌 제2의 삶 설계 “국수 대접 기대하세요”

“전화가 늦어 죄송해요. 사우나 다녀오느라…. 호호.”

생기가 넘쳤다. 무거운 짐 하나를 훌훌 털어낸 듯했다. 학창 시절 큰 시험을 마친 뒤 홀가분하게 목욕탕 다녀온 기억이 떠올랐다. ‘버디 퀸’ 박지은(32·사진)이었다.

그는 지난 주말 전남 무안CC에서 끝난 2012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정규투어 시드전 본선에서 합계 이븐파로 32위에 올라 당당히 합격증을 받았다. 내년부터는 동갑내기 이정연과 함께 KLPGA투어 출전 최고령 선수가 된다. 4라운드로 치러진 이 대회는 내년 시즌 출전자를 선발하는 일종의 필드 수능시험이었다. “주위에서 다들 말렸어요. 잘해야 본전 아니겠어요. 된다는 보장도 없어 부담이 심했죠. 하지만 어떤 특혜도 없이 정정당당하게 평가를 받고 싶었어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상금 랭킹으로 1차 시드전을 면제받은 박지은은 2차 예선에서 3라운드 합계 3오버파로 92위에 그쳐 100위까지 주어지는 본선 출전 티켓을 간신히 얻었다. 30대에 처음 접한 시드전은 낯설기만 했다. 명색이 프로 대회인데 전담 캐디 없이 4백 1캐디로 라운드를 돌아야 했다. 어드레스에 들어갔는데 카트가 ‘삑삑’ 소리를 내며 이동하고 그린에서 퍼팅 라인을 밟는 일도 벌어지는 등 황당한 일들이 일어났다.

박지은의 골프 인생에 이번 같은 테스트에 해당하는 퀄리파잉스쿨은 처음이었다. 주니어 무대에서 수십 승을 올린 화려한 아마추어 경력을 쌓은 그는 2000년 LPGA투어에 진출할 때는 전년도 2부 투어 상금왕 자격으로 직행했다. 퀄리파잉스쿨을 거치지 않고 바로 뛰어든 것은 한국 선수로는 그가 처음이었다.

LPGA투어에서 6승을 올린 그가 고국 무대로 돌아올 결심을 한 이유는 뭘까. “골프를 처음 시작한 한국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어요. 오랜 부상으로 힘든 시기를 거쳤잖아요. 이제 서서히 플레이가 살아나고 자신감도 되찾고 있어요. 팬들 앞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골퍼가 아닌 제2의 삶을 설계해야 하기도 하고요.”

박지은은 모국에서 뛸 내년에 자신의 모든 걸 걸겠다는 각오다. 겨울 훈련은 미국 애리조나에서 할 계획. “선수로 뛰는 마지막 해가 될 수도 있어요. 그동안 못해본 KLPGA투어 우승을 꼭 하고 싶어요. 진정한 프로로 컴백하는 기분이에요. 후회 없이 해볼래요.”

박지은은 2012년이 끝나면 많은 변화가 있을지 모른다고 운을 띄웠다. 결혼을 전제로 사귀는 남자친구의 응원도 큰 힘이 된단다. “아마 국수를 한 그릇 먹게 해드릴 수도 있어요. 지켜봐 주세요.”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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