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투구폼서 나오는 공, 그러나 눈앞서 뚝↓ 직구·체인지업 두 구종만으로도 타자 제압 순해 보이는 외모? 마운드선 냉철한 승부사 다 좋은데 1루 견제능력 부족이 흠 부상 없는 자기관리…SK 뒷문은 든든!
이번엔 최근 5년간 가장 강한 팀인 SK의 마운드를 확실하게 지키고 있는 정우람에 대해 분석해본다. 정우람은 2010년 75게임에 출장해 102이닝을 던지면서 8승4패 2세이브 18홀드를 기록하며 SK의 우승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2009년에는 62게임, 56이닝, 1승1패 1세이브 2홀드를 거두며 2008시즌의 피로감을 이겨내지 못한 듯했다. 사실 2011시즌도 2009년과 마찬가지로 이전 시즌 많은 경기에 출장해 많은 이닝을 소화한 탓에 힘든 시즌이 우려됐지만 사전준비가 충실했던 덕에 68경기에서 94이닝을 던지면서도 4승4패 7세이브를 올릴 수 있었고, 특히 방어율에선 1.81이라는 경이적인 성과를 냈다. 우선 불펜투수로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경기와 이닝을 소화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지가 굉장히 궁금해진다. 물론 좋지 않았던 시즌도 있었다. 그럼에도 큰 부상 없이 몇 년간 꾸준히 성장·발전하는 모습은 모든 불펜투수들의 모범답안이지 않을까 생각해보면서 밖에서 보는 정우람의 기술적 능력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코칭스태프의 얘기를 모아봤다.
● 기술적 측면
정우람의 투구폼은 심플하다. 어찌 보면 참 편하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쉽게 던진다. 정우람은 구속을 140km 안팎으로 유지하는 투수다. 그리고 이렇게 일정하게 유지되는, 그만의 가장 안정된 폼에서 다른 구종인 서클체인지업이 나온다. 타자들이 타석에서 가장 까다롭게 느끼는 순간이다. 특히 우타자 바깥쪽으로 들어가는 직구는 좌완투수 중 가장 정확한 제구를 자랑한다.
자, 타자가 바깥쪽 직구를 하나 흘려보냈다. 그리고 똑같은 템포, 같은 투구폼에서 바깥쪽 공이 높게 보인다. 순간 타자의 뇌는 몸에 명령을 내린다. 140km짜리 바깥쪽 직구가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할 것 같다. 이 공을 치지 않으면 2-0이 돼 볼카운트가 불리해진다. 이런 명령을 들은 타자의 몸은 평소 훈련한 대로 정우람의 평소 구속에 맞춰 타격하려고 준비한다. 마지막으로 타자는 눈으로 공의 구종이 직구인지 확인하고, 틀림없는 직구라고 확신하고 스윙을 한다. 하지만 그 순간 정우람의 공은 속도를 늦추면서 갑자기 떨어져버린다. 이런 상황이 계속 반복되면서 우타자는 정우람의 볼에 대해 자신감을 잃는다.
정우람이 던지는 구종은 아주 단순하다. 여러 구종을 던질 수는 있지만 경기에서 사용하는 구종은 고작 2가지라고 보면 된다. 직구와 체인지업. 물론 적절히 슬라이더와 커브의 중간 형태인 브레이킹볼로 타자의 타이밍을 흩뜨려 놓는다.(이런 구종을 슬러브라고 한다) 마무리 투수와 마찬가지로 많은 이닝을 던지는 게 아니고, 대부분 한 타자랑 한 타석만 상대하지만 2가지 구종만으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한다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을 것이다. 2010년 기록을 보면 우타자 상대 OPS가 0.546으로 좌투수임에도 가장 좋았다. 체인지업 상대로는 류현진(한화)의 뒤를 이어 2위를 기록하는 등 직구와 체인지업, 2가지 구종만으로도 충분히 타자를 제압한다는 사실이 기록으로 입증된다.
체인지업 한 가지만 놓고 보면 류현진, 봉중근(LG) 다음 정도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앞서 밝힌 대로 분석해도 잡히지 않는 똑같은 투구폼과 그 이전에 던지는 직구의 제구가 뒷받침되기 때문에 그의 체인지업은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
정우람은 가끔 145km 이상을 던지기도 한다. 가장 어려운 순간, 승패를 결정지을 수 있는 상황에선 도망가지 않고 더 힘을 내는 것 같다. 마음만 먹으면 구속을 3∼5km 정도 끌어올릴 수 있는 능력을 지녔고, 이런 구속을 평소 잘 이용하지 않는 우타자 몸쪽으로 던진다는 것이다. 타자들도 바깥쪽 공만 치다가 갑자기 몸쪽으로 공이 날아들면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투수들도 한쪽으로만 볼을 던지다가 반대쪽으로 투구하게 되면 그 전에 던졌던 투구폼을 완전히 수정해야 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제구하기가 쉽지 않다. 그만큼 집중력이 뛰어나고, 절제된 투구폼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정우람은 또 마운드에서 승부사로 보인다. 그러나 투구 내용도 간단명료하다. 내 공을 칠 수 있으면 쳐보라는 식이다. 직구는 투수의 가장 뛰어난 무기다. 직구를 던져서 못 치면 계속 직구로 승부하고, 타이밍이 맞아나가면 체인지업으로 승부한다. 타자가 흔들리면 몸쪽 직구를 승부구로 쓴다. 말로는 쉽지만 실전에선 쉽지 않은 볼 배합이다. 정우람의 능력을 읽을 수 있다.
● 제5의 내야수
최근 투수의 보크가 강화되면서 좌투수의 1루 견제가 제약을 받고 있고, 1루 견제 능력(pick off)이 떨어지는 좌투수는 주자를 묶는 데 점점 어려움을 겪고 있다. 7∼9이닝을 책임지는 셋업맨과 마무리 투수는 한 베이스를 쉽게 허용해선 안 되기 때문에 주자의 스타트를 막을 수 있는 견제능력이 중요하다.
그러나 좌투수임에도 불구하고 정우람의 1루 견제 능력은 뛰어나다고 볼 수 없다. 그래서 1루에 주자가 나가면 퀵모션으로 투구를 하는데, 이때 정확했던 제구가 흔들리는 모습이 나타난다. 1루 견제에 대한 훈련시간과 방법을 더 늘리든지, 퀵모션을 더 집중적으로 훈련해서 흔들리지 않는 제구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 외유내강의 전형
외모에서 풍기는 인상, 행동, 그리고 야구 스타일. 밖에서 보는 느낌은 조용하고 참 순해 보인다. 그러나 마운드에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경기를 주도해간다. 본인의 속마음인지는 알 수 없지만 표정변화가 거의 없는 냉정함은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의 투수임을 보여준다. 투지와 투쟁심, 그리고 자신감과 성취욕이 없으면 어려운 상황에서 도망가는 게 일반적이지만 정우람은 어려움을 즐기지는 않더라도 뒷걸음치지는 않는다. 투수가 첫째로 갖춰야 할 모습, 그리고 가르쳐주기도 힘든 부분을 지니고 있다는 게 큰 장점인 투수다.
● 바라는 점
그동안 정우람의 기록을 보면 ‘무리했다’보다는 ‘많이 던졌다’는 표현이 맞지 않을까 싶다. 부상이 없기 때문이다. 피로에 의해 구위가 떨어지는 모습은 엿보였지만 그로 인해 공을 던지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SK 김상진 투수코치는 그 이유로 유연성을 들었다. 타고난 유연성에 부상위험이 적은 투구폼, 그리고 젊음. 이 3가지가 현재의 정우람을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보인다. 그래도 지속적으로 과부하가 걸리면 부상이란 것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엄습하는 법이다.
항상 같이 생활하는 코칭스태프는 정해진 훈련량을 착실히 소화하는 선수로 평가한다. 오늘 소화할 스케줄을 준 뒤 혹시 다른 일로 신경을 쓰지 못할 때도 정우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과제를 마치는 선수라는 얘기다. ● 기술적 준비
앞서 언급한 바대로 정우람이 실전에서 사용하는 구종은 많지 않다. SK 투수코치는 커브를 추가해주길 원하고 있다. 2∼3년간 커브를 던지기 위해 지속적으로 훈련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정우람은 손목의 후킹(흔들리는 모습)이 있는 투구폼을 갖고 있다. 이런 것이 브레이킹볼을 완벽하게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하는 이유가 아닌가 싶다. 새 구질을 만들어 실전에 활용하는 것도 시급한 문제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그리고 장점으로 평가되는 여러 가지를 더 오래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 전성기를 보내고 있지만 부상을 당하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할 필요도 있다. 과도한 등판으로 인해 쌓인 2년간의 피로를 잘 풀고, 내년 시즌에도 굳건하게 SK의 뒷문을 지켜주길 기대한다.
정우람은?
▲ 생년월일=1985년 6월 1일 ▲ 출신교=하단초∼대동중∼경남상고 ▲ 키·몸무게=181cm·82kg(좌투좌타) ▲ 프로 입단=2004년 신인 드래프트 SK 2차 2순위 지명·입단 ▲ 2011년 연봉=2억2000만원 ▲ 2011년 성적=68경기 94.1이닝 4승4패 7세이브 25홀드(방어율 1.81) ▲ 수상 경력=2008·2011년 홀드 1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