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종구기자의 킥오프]감독 선임, 서두르면 망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13일 03시 00분


조광래 전 축구대표팀 감독의 갑작스러운 경질로 축구계가 혼란스럽다. 한국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 B조 선두를 유지하고 있지만 내년 2월 29일 쿠웨이트와의 최종전 결과에 따라선 탈락할 수도 있다.

대한축구협회는 “시간이 없어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한국을 잘 아는 감독으로 가급적 빨리 선임하겠다”고 밝혔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기술분석관이던 아프신 고트비 시미즈 감독과 최강희 전북 현대 감독, 홍명보 올림픽대표팀 감독 등이 물망에 올라 있다. 여론을 떠보기 위해 일부 후보의 이름을 언론에 고의적으로 흘렸다는 설이 나돌 정도로 협회는 차기 감독의 빠른 선임에 급급해하고 있다. 반면 이들 후보 감독군은 하나같이 ‘독이 든 성배’를 받기를 일단 사양한 상태다.

사실 쿠웨이트는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00위로 32위인 한국에 한 수 아래다. 역대 전적 8승 4무 8패로 박빙이지만 한국은 2004년부터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 ‘누가 사령탑에 앉든 지진 않을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감독 선임 작업이 그렇게 급할 필요는 없다.

전문가들은 심사숙고해 국내 감독보다는 제대로 된 외국 감독을 영입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국내 감독의 경우 늘 선수 선발 등에서 잡음이 일었다. 국내 축구계는 겉으로는 학연 지연 등이 없어졌다지만 알게 모르게 그와 얽힌 알력이 있는 게 사실이다. 한국 축구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향상시킬 외국의 실력파 감독이 필요한 이유다.

일본은 지난해 남아공 월드컵이 끝난 뒤 약 2개월에 걸친 검증 과정을 통해 이탈리아 출신 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을 선임했다. 일본 축구가 가야 할 청사진을 그린 뒤 강화위원장이 유럽에서 여러 후보를 만나 자케로니를 낙점했다. 일본은 최근 일찌감치 최종 예선 진출을 확정하는 등 순항하고 있다.

한국은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명장 거스 히딩크 감독이 그만둔 후 성적이 부진할 때마다 여론에 밀려 성급하게 감독을 경질하고 선임해 왔다. 그러고는 늘 역풍을 맞았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지금 한국 축구에 필요한 것은 신속한 감독 선임이 아니라 한국 축구를 업그레이드할 적합한 인물을 찾는 것이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