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첫 끝내기 만루포 보다가 애인과 끝난 사내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24일 03시 00분


29년간 KBO 생활 이상일 사무총장의 野生野死

한국 프로야구의 산증인인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상일 사무총장이 서울 강남구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포즈를 취했다. 그는 “야구기록원을 시작으로 운영 홍보 
마케팅을 거치며 야구와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부터 KBO 총재특별보좌역으로 야구박물관 관련 업무를 
맡는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한국 프로야구의 산증인인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상일 사무총장이 서울 강남구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포즈를 취했다. 그는 “야구기록원을 시작으로 운영 홍보 마케팅을 거치며 야구와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부터 KBO 총재특별보좌역으로 야구박물관 관련 업무를 맡는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프로야구 출범 첫해인 1982년 3월 27일 서울 동대문야구장. 3시간을 기다려 개막전 표를 샀다. 경기 도중 여자친구가 “날이 춥다. 그만 보고 가자”며 재촉했다. 야구를 포기할 순 없었다. 말다툼 끝에 여자친구를 먼저 보냈다. 7-7로 맞선 10회말. MBC 청룡(현 LG) 이종도가 삼성 투수 이선희를 상대로 끝내기 만루홈런을 날리는 극적인 드라마를 지켜본 뒤 자리를 떴다. 그 후 여자친구와는 다시 만나지 못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상일 사무총장(53) 얘기다. 그는 1983년 KBO에 입사해 29년을 보낸 프로야구의 산증인이다. 1982년부터 올해까지 프로야구 개막전과 한국시리즈를 빼놓지 않고 지켜봤다. 이달 말 3년 임기의 사무총장을 마치고 내년부터 총재 특별보좌역으로 야구 박물관과 명예의 전당 업무를 맡는 그의 ‘야생야사(野生野死)’ 인생을 들어봤다.》
○ 살아 숨쉬는 야구 박물관을 꿈꾸다

22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야구회관 5층 사무총장실. 이 총장은 짐 정리에 한창이었다.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 진출 당시 사인볼과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기념 방망이 등 기념품이 가득했다. 벽면에는 프로야구 원년부터 올해까지 관중 추이를 표시한 대형 그래픽 판이 눈에 띄었다. 이 총장은 “내가 사무총장이 된 뒤 매년 관중이 늘어 올해 최다인 680만9965명을 기록해 뿌듯했다”고 말했다.

―사무총장을 맡은 지 3년 만에 물러나는데….

“취임할 때 ‘임기 동안 미련 없이 뛰겠다’고 다짐했는데 그 말대로 됐다(웃음). 사람 욕심이야 끝이 없지만 후회는 없다.”

―야구 박물관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미국과 일본 프로야구 박물관을 인터넷으로 살펴보고 있다. 영화 ‘박물관은 살아 있다’처럼 살아 있는 공간을 만들 생각이다. 예컨대 박물관에서 삼성 이승엽과 홈런 대결을 하고 롯데 최동원의 공을 쳐보는 사이버 체험 코너 등을 만들어 생기를 불어넣겠다.”

―야구 박물관은 언제 어디에 세워지나.

“3년 후 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인천과 부산에서 유치를 원하고 있지만 결정된 건 없다. ‘야구 메카’였던 동대문야구장 자리에 야구 박물관이 세워졌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KBO는 야구회관 지하 창고에 야구 사료 7000여 점을 모아놓았다.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 이 총장은 “구본능 총재께서 사비를 들여 야구 원로들을 동영상에 담고 녹취를 하고 있다. 개인 소장자에게서 소중한 야구 자료를 빌려오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 제10구단 창단 절실

이 총장은 올해 “제9구단 NC 다이노스 창단이 선택이라면 10구단은 필수”라고 했다.

“9구단 체제로 가면 구단당 현재 133경기에서 128경기로 줄어든다. 매주 8팀이 경기를 하고 한 팀은 4일을 쉬어야 한다. 경기 일정을 짜기 어렵고 구단 수입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일본이 12개 팀인데 인구가 적은 한국에 10개 팀은 많다는 지적도 있다.

“올해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한 고졸 대졸 선수 777명 가운데 취업이 된 선수는 95명뿐이다. 나머지는 실업자다. 10구단이 생겨야 아마추어 선수들이 희망을 갖게 된다. 기존 구단의 협조에 달렸다.”

○ KBO의 역사를 함께하다

이 총장은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익산에서 학교를 다녔다. 고1 때인 1974년 전주에서 처음 실업야구 시범경기를 관람하면서 야구에 매료됐다. 1978년 명지대(토목공학과)에 입학한 뒤 고교, 대학, 실업야구가 열리는 동대문야구장에 살았다. 4학년 여름방학 때는 15일 동안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4경기씩 본 적도 있다.

―야구의 어떤 점이 좋았나.

“개인과 단체가 조화를 이루는 스포츠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수많은 경우의 수와 극적인 결과는 언제나 짜릿했다.”

―KBO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

“우연히 프로야구 기록 강습회 모집 공고를 보고 응시해 합격했다. 그 후 KBO에 입사해 기록 관리, 운영, 홍보, 마케팅팀에서 일했다. 야구를 보고 밤새워 기록을 정리하는 게 즐거웠다. 그사이 총재 12명(대행 포함)과 사무총장 6명을 모시며 많이 배웠다.”

이 총장은 시원섭섭한 표정이었다. 그는 “29년간 야구와 함께했고 앞으로도 항상 야구 곁에 있고 싶다”고 했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