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일의 ‘내사랑 스포츠’]“히딩크감독은 ‘운장(運將)’, 그럼 최강희 감독은?”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25일 08시 57분


'봉동 이장'이라는 친근감 넘치는 별명이 붙은 최강희 감독.  스포츠동아
'봉동 이장'이라는 친근감 넘치는 별명이 붙은 최강희 감독. 스포츠동아
조광래 감독이 갑작스럽게 경질당해 공석이 됐던 국가대표축구대표팀 감독 자리. 막중한 책임감이 따르는 자리인지라 '독이 든 성배'로 불리기는 하지만, 후보로 떠오른 국내 유력 지도자들이 처음에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감독직 제의를 고사하거나 거부하는 것을 보면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여러 스포츠 종목 대표팀 감독 자리 중에서도 축구대표팀 감독이야말로 온 국민의 시선이 집중되는 최고의 영예로운 자리인데, 손사래를 치다니….

"한국은 축구 변방으로 알려져 있어 외국인들은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직에 대해 별로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필자가 아는 한 그렇지만도 않다.

전 세계에 일고 있는 '한류' 붐처럼 한국축구도 아시아 최강국으로 국제무대에 잘 알려져 있고, 외국인 지도자들 사이에서 한국축구대표팀 감독 자리는 매력 있는 곳으로 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현재 국내 축구계에서 최고의 지도자로 꼽히는 '봉동 이장' 최강희(52) 전북 현대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게 됐다.

최 감독은 "지금 한국축구는 중요한 시기에 서 있다. 나를 길러준 한국축구를 위해 결연한 각오를 다지고 나섰다"고 밝혔다.

굳은 결의를 다진 최 감독. 그는 과연 위기에 빠진 한국축구를 구해내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

역대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을 살펴볼 때 가장 성공한 지도자로는 2002년 한일월드컵 때 한국대표팀을 이끌었던 거스 히딩크(65) 감독이 첫손에 꼽힌다.

그런데 히딩크 감독이 성공한 가장 큰 이유로는 '운(運)'을 꼽는 축구 전문가들이 많다.

운이라…. 히딩크 감독은 여러 가지 복을 받았다고 해서 '운장(運將)'으로도 불렸다.

월드컵을 홈구장에서 치를 수 있었다는 이점 외에도 준비하는 과정에서 주위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자신의 계획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히딩크 감독은 각 프로 구단으로부터 선수들을 마음대로 불러들여 합숙훈련을 시킬 수 있었다.

한 달 정도 전지훈련을 가는 것은 기본이고, 월드컵을 앞두고도 한 달 넘게 합숙훈련을 실시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은 외국 클럽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으나, 국내 프로 구단들은 한일월드컵에서의 성공을 위해 선수들을 대표팀에 아낌없이 보내주었다.

덕분에 히딩크 감독은 오랫동안 선수들을 데리고 있으면서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훈련을 할 수 있었고 체력훈련도 그의 계획대로 진행됐다.

여기에 월드컵 개최국으로서 지역예선을 치를 필요가 없었다는 것도 히딩크 감독에게는 행운이었다.

히딩크 감독 이후 한국축구대표팀을 맡았던 외국인 감독의 경우를 보더라도 지역예선에서 경질되는 경우가 많았다. 제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당장 성적이 좋지 않으면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히딩크 감독은 지역예선을 치르지 않은 덕분에 체계적으로 선수를 발굴해 키울 수 있었고 팀을 자신의 구상대로 정비해나갈 수 있었다.

사실 지역예선을 치렀더라면 히딩크 감독은 매번 경기를 준비하느라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을 것이다.

이처럼 운이 좋았던 '운장' 히딩크였지만, 사실 이런 운도 히딩크 감독이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나 다름없다.

히딩크는 축구 감독이기 이전에 스포츠 과학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체육 선생님'이자 처세(?)에도 능한 '축구 행정가'였다.

히딩크 감독은 고국 네덜란드에서 체육교사를 양성하는 단과대학을 나왔다. 스포츠 과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그는 한국축구 대표선수들의 가장 큰 문제가 후반 체력 저하란 점을 간파하고 '파워 프로그램'을 도입해 태극전사들을 강철 인간으로 재탄생시켰다.

끊임없는 포지션 경쟁으로 선수들의 승부욕을 자극하는 심리전에 능했고, 코치진과는 골프 등을 같이 하면서 스스럼없이 하나가 됐고, 기술위원장을 비롯한 축구협회 관계자들과도 수시로 만나 소통을 하는 데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정몽준 당시 대한축구협회장에게는 항상 정중하고 깍듯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주변에 있는 누구나 그를 돕고 싶게 만들었다.

이런 히딩크였으니 스스로 복과 운을 불러왔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친근한 이미지와 선수들과의 소통 능력이 뛰어나 '봉동 이장'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최강희 감독.

최 감독의 여러 가지 자질을 볼 때 히딩크 감독 못지않게 운을 불러들일 수 있는 지도자로 보는 축구 전문가들이 많다.

최 감독이 '운장' 히딩크를 넘어서 복이 넘치는 '복장(福將)'이 됨으로써 한국축구를 회생시켜 줄 것을 기대해 본다.

권순일 기자 stt7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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