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뒤집어 보자고!” 두 열정 손 맞잡다
홈 유나이티드 FA컵 우승 이끈 이임생 감독, 백종석 코치 영입
싱가포르 프로축구 홈 유나이티드의 이임생 감독(왼쪽)이 다음 시즌부터 팀에 합류하는 백종석 코치와 25일 경기 과천시민회관에서 만나 담소를 나누고 있다. 이 감독은 싱가포르 진출 2년 만인 올해 FA컵 우승과 리그 준우승이란 성과를 얻었다. 과천=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조별 예선 E조 3차전 한국과 벨기에의 경기. 이미 2패를 당했던 한국의 마지막 경기는 처절했다. 그라운드에는 머리에 피로 물든 붕대를 감은 한 선수가 서 있었다. 원조 ‘붕대 투혼’ 이임생(40)이었다. 당시 그를 비롯한 한국 선수들은 전반에 먼저 한 골을 허용했지만 후반 27분 유상철(40·현 대전 시티즌 감독)의 동점골로 극적인 무승부를 만들었다.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최후까지 포기하지 않는 한국 선수들의 투혼만은 길이 남았다. ‘이임생의 붕대’는 오랫동안 한국 축구팬들의 뇌리 속에 남아 있던 투혼의 상징이었다.
13년이 흐른 지금. 그는 싱가포르 프로축구 홈 유나이티드의 감독이다. 일시 귀국한 이 감독을 25일 만났다. 그는 자신과 각별한 축구계 선배 차범근 씨(58)가 운영하는 축구교실 시상식 참석차 경기 과천시민회관을 찾았다.
이 감독은 싱가포르 진출 2년 만인 올해 FA컵 우승과 리그 준우승이라는 성과를 거뒀다. 그는 아들에 대한 부정(父情) 때문에 싱가포르 축구팀과 인연을 맺게 됐다. “싱가포르 유학을 간 막내아들과 함께 현지에서 버스를 타고 가는데 집 근처에 불이 켜진 운동장이 보였다. 아들에게 물었더니 프로축구팀이 훈련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는 “아들과 함께 지내면서 축구팀을 지도하고 싶다는 생각에 내가 직접 감독을 하고 싶다는 e메일을 보냈다”고 했다. 문을 두드린 지 3개월여. 현지로 인터뷰를 하러 오라는 답장이 왔다. 틈틈이 외국어를 익혀 온 그는 영어 인터뷰를 마치고 감독이 됐다. 현재 영어로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구단 측에서는 어떻게든 트로피를 안겨달라고 했습니다.” 부임 첫해 부담이 컸다.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는 용병 선수와의 마찰도 있었다. 구단은 스타 선수를 계속 기용할 것을 종용했다. 하지만 이 감독은 “축구는 혼자 하는 경기가 아니다”라며 원칙과 자신의 주관을 관철시켰고 결국 부임 첫해에 팀을 3위에 올려놓았다.
그는 “현대의 축구 감독은 강약을 조절하는 동시에 자신의 축구 철학을 선수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어야 한다”며 감독으로서의 소신을 밝혔다. 해외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한국인으로서의 책임감도 느끼게 됐다. 그는 후배 지도자들에게 도전을 멈추지 말라고 당부했다. “젊다는 것은 도전의 기회가 많다는 것입니다. 도전을 하면 끊임없이 노력하게 되고 그래야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 자신도 여전히 꿈을 꾸고 도전하고 있다. 이 감독의 다음 시즌 목표는 리그 우승이다. 이번 시즌 FA컵 우승 자격으로 나서게 된 아시아축구연맹(AFC)컵 상위권 진출도 노리고 있다.
이 감독은 다음 시즌에 백종석 코치(32)와 함께한다. 백 코치는 영어에 능통해 AFC 지도자코스 강사들의 통역을 맡기도 했다. 그는 “통역사로 지내다 세계적 감독이 된 레알 마드리드의 조제 모리뉴 감독이 희망과 용기를 준다”고 했다.
자신의 꿈을 위해 한 걸음씩 전진하고 있는 이 감독과 백 코치. 두 사람이 주고받는 눈길 속에 서로에 대한 믿음과 다음 시즌에 대한 자신감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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