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거스 히딩크 감독을 보좌한 허진 언론담당관은 기자들을 만나면 “제발 잠 좀 자게 전화하지 말라”고 하소연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저녁에 휴대전화를 끄고 오전 9시가 돼서야 다시 켰다. 그는 하루에 수백 통의 전화를 받았다. 그만큼 대표팀 정보는 기자들의 큰 관심거리다. 허 담당관은 히딩크 감독의 요청에 따라 외교통상부에서 파견했다. 영어를 잘하는 담당관을 둬 미디어와의 가교 역할을 맡기고 자신은 축구에만 전념하겠다는 히딩크 감독의 뜻이었다. 외국 언론은 얀 룰프스 기술분석관이 담당했다. 히딩크 감독은 4강 신화를 썼다.
이후 언론담당관은 관례가 됐다. 과거 국내 감독들은 사실상 모든 기자들을 상대하며 대표팀을 지도하는 ‘투 잡(Two Job)’을 해야 했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16강을 이룩한 허정무 감독은 2007년 말 사령탑에 앉은 뒤 과거처럼 기자들 전화를 다 받아주다 혼란에 빠졌다. 결국 휴대전화 번호를 바꾸고 모든 인터뷰를 언론담당관에게 미루고서야 대표팀에 전념할 수 있었다.
최근 대한축구협회가 최강희 신임 대표팀 감독에 대해 특정 기간에 언론사별 인터뷰를 허용하고 특별한 사안이 없을 땐 언론사 개별 인터뷰를 자제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이에 일부 언론이 ‘축구협회 최강희 감독의 입 막나’ ‘언론 통제’라는 표현을 써가며 보도했다.
대표팀 감독과 프로 감독은 엄연히 다르다. 프로 감독은 소속팀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가급적 많이 미디어와 접하고 팬들과 소통해야 한다. 2009년과 2011년 전북 현대를 K리그 정상에 올려놓은 최 감독의 ‘언론 대처’ 능력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단일 프로팀과 국가대표팀에 쏠리는 언론의 관심은 천양지차다.
전임 조광래 감독은 직접 온갖 미디어를 ‘상대’하느라 정작 경기력 향상에는 소홀히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의 눈앞에는 ‘독(毒)이 든 성배(聖杯)’가 항상 놓여 있다. 그걸 마시지 않으려면 최 감독은 선수 옥석 가리기와 전술 구상에 전력투구해야 한다. 최 감독의 양 어깨에는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온 국민의 염원이 얹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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