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김기태 ‘방망이 20자루’의 굵은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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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13일 03시 00분


이진영 SK 초짜선수 시절 김기태에 선물받은 후 펄펄선수-감독 재회… 보은 다짐

LG 김기태 감독(왼쪽)과 이진영이 10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위해 손을 맞잡았다. 둘은 9년 전 SK에서 만나 선후배 간의 정을 쌓았다. 이진영은 “팀의 4강 진출로 감독님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LG 제공
LG 김기태 감독(왼쪽)과 이진영이 10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위해 손을 맞잡았다. 둘은 9년 전 SK에서 만나 선후배 간의 정을 쌓았다. 이진영은 “팀의 4강 진출로 감독님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LG 제공
#1. 이진영(32·LG 외야수)은 9년 전인 2003년을 잊지 못한다. 그는 SK 소속 고졸 5년차로 멋모르고 열심히 야구하던 ‘꼬마’였다. 2002년 처음 3할 타율(0.308)을 기록하며 자신감도 많이 붙었다.

2003년 시즌을 앞둔 어느 날, 하늘 같은 팀 선배 김기태(LG 감독)가 그를 부르더니 내기를 제안했다. “올해도 3할을 치면 최고급 방망이 20자루를 선물하겠다”는 거였다. “제가 지면 어떻게 할까요”라고 묻자 당시 선수였던 김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소주나 한잔 사.”

그해 이진영은 타율 0.328을 기록하며 타격 5위에 올랐다. 팀의 한국시리즈 진출에도 기여했다. 김 감독은 사비를 털어 흔쾌히 방망이 20자루를 사 줬다.

#2. LG의 중고참이 된 이진영은 지난해 8월 그날을 잊을 수 없다. LG 2군 감독이었던 김 감독은 당시 수석코치로 1군에 합류했다. 재회의 기쁨을 만끽하기에는 LG의 상황이 너무 안 좋았다. LG는 시즌 초반 선두권을 달렸지만 후반기 들어 끝없이 추락하고 있었다. 김 감독은 분위기 반전을 위해 머리를 박박 깎고 운동장에 나타났지만 팀의 하락세는 멈추지 않았다.

어느 날 경기를 지고 난 뒤 운동장을 나오는데 한 팬이 다가오더니 “이진영 선수, 제발 야구 좀 잘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이진영은 “초등학교 때 야구를 시작한 뒤 처음 들어본 말이었다. 너무 창피해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자존심이 엄청 상했지만 할 말이 없어 ‘죄송합니다’라며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각종 부상에 시달리며 10년 만에 최악의 성적(타율 0.276, 1홈런, 37타점)을 냈다. 팀은 9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3. 전지훈련을 앞둔 이진영은 요즘 마음속으로 칼을 갈고 있다. 팀의 10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위해서도, 개인적인 자존심 회복을 위해서도 중요한 한 해다. 올해는 또 LG와의 4년 계약의 마지막 해이기도 하다.

더구나 지난해 수석코치였던 김 감독은 올해 신임 사령탑이 됐다. 이진영은 “어릴 적 야구를 시작할 때부터 최고의 왼손 타자였던 감독님은 롤 모델이었다. 감독님으로부터 많은 걸 배웠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 감독님을 위해서라도 야구를 잘하고 싶다”고 했다.

올 시즌 그가 생각하는 역할은 분위기 메이커다. 그는 “사실 실력으로만 보면 상위권 팀들과 종이 한 장 차이다. 그런데 성적이 좋지 않을 때 우리 팀은 분위기가 더욱 가라앉는 경향이 있다. 경험 많은 고참으로서 어린 선수들을 잘 다독여 좋은 때건 안 좋은 때건 LG의 야구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진영은 올 시즌 타격왕을 목표로 잡았다. 2004년에 기록한 타격 2위(타율 0.342)를 넘겠다는 각오다. 그는 “개인 성적보다 타율을 올리는 게 팀에 도움이 될 거라고 믿는다”고 했다. 이진영에게 2012년은 행복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을까.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김기태 ‘화끈 리더십’ ▼
지각하면 50만원 벌금… 모범 선수엔 보상 확실

김기태 LG 감독은 선수 시절부터 강한 카리스마로 유명했다. 친근한 형님이었지만 팀워크를 해치는 행동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LG 선수단이 최근 자체 회의를 통해 수정한 상벌 규정에는 이 같은 김 감독의 의지가 반영됐다.

먼저 팀을 비방하거나 내부 정보를 유출한 경우에는 벌금 1000만 원을 물리기로 했다. 선수단 내 도박 행위나 폭행 등도 1000만 원이다.

지각하는 선수 역시 처벌 대상이다. 지난해에는 벌금 5만 원이었지만 올해는 10배나 많은 50만 원으로 책정했다. 한 선수가 “10번 지각하면 500만 원을 내야 하는데 액수가 너무 과한 것 아니냐”고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자 김 감독은 “10번 지각할 때까지 그 선수는 팀에 남아 있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뼈있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 밖에 전력질주를 하지 않거나 늦게 베이스 커버에 들어오는 느슨한 플레이에도 수백만 원의 벌금을 물리기로 했다.

김 감독은 채찍만큼 당근도 준비했다. 팀을 위해 헌신하고 팀플레이에 모범을 보이는 선수에겐 사비를 털어서라도 확실한 보상을 해줄 계획이다.

김 감독은 최근 실시한 체력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박현준과 김태군, 우규민, 유원상 등 주축 선수들을 과감하게 전지훈련 명단에서 제외했다. 신상필벌의 원칙을 지켜 팀을 새롭게 변화시키겠다는 ‘김기태식 리더십’인 셈이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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