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중에도 출전…난 농구에 미친 빵점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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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21일 07시 00분


선수로서, 코치로서 그리고 주부로서 언제나 1등인 신한은행 전주원 코치가 스포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담담하게 성공비결을 밝혔다.  안산 |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 @seven7sola
선수로서, 코치로서 그리고 주부로서 언제나 1등인 신한은행 전주원 코치가 스포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담담하게 성공비결을 밝혔다. 안산 |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 @seven7sola
외모 되지 실력 되지…스타플레이어 그녀
하지만, 임신중에도 코트 누빈 ‘미친 엄마’
은퇴 후에도 농구가 좋아 코트로 다시 돌아왔다

이제는 코치로서 제2의 농구인생 승승장구
엄마 이해해주는 여덟 살 딸 대견하기만 할 뿐…
가족 헌신 없었다면 농구인 전주원도 없었죠


신한은행 코치의 파란만장 농구일기


누구보다 아름다웠다. 하나로 질끈 묶은 긴 머리를 휘날리며 날쌔게 코트를 누볐다. 입가에는 걸린 크고 환한 미소에 팬들도 따라 웃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강하기도 했다. 만 서른아홉이라는 나이까지 무릎 부상을 참아내며 뛰었다. 그리고 은퇴하는 그 순간까지 끝내 정상을 지켰다. 여자농구 역대 최고의 포인트가드이자 최고의 청춘스타였던 전주원(40·안산 신한은행) 코치. 안산 고잔동 신한은행 숙소에서 그녀를 만났다. 은퇴 후 짧게 자른 단발머리 덕에 더 어려 보인다는 인사를 건네자 “나이가 드니 예쁘다는 말보다 동안이라는 말이 훨씬 좋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 웃음만큼 시원한 이야기들을 풀어 놓았다.

여자 그리고 스타 전주원

-입술 위에 있던 ‘복점’이 사라졌네요.

“저 이거 2008∼2009 시즌 끝나고 뺐어요. 예전부터 늘 없애고 싶었지만 주변에서 복점이고 트레이드마크라고 말리셨거든요. 그러다 선수 생활 1년 남기고 ‘이제 말년인데’ 싶어서 몰래 없앤 거죠.”

-결혼 소식이 스포츠전문지 1면을 장식할 정도로 스타였어요.

“그때는 경기 끝나면 선수들이 버스까지 이동하기도 힘들 정도로 농구 인기가 높았어요. 운동선수 인기투표 때 남자선수들에게도 많이 밀리지는 않았던 정도인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남성팬도 있나요?

“음. 케이크·꽃과 함께 ‘아침을 당신과 맞고 싶다’는 편지를 보내셨던 분이 기억나네요. 하하하.”

-미녀 선수로 유명해서 더 그랬나 봐요.

“하하하. 솔직히 제가 예쁜 얼굴은 아니죠. 그냥 예전에는 여자 선수들이 경기 때 굉장히 인상을 많이 썼다는데, 저는 반대로 늘 웃어서 눈에 띄었나 봐요.”

-지금 남편과의 연애도 비밀리에 하셨겠네요.

“굳이 숨기지는 않았어요. 국가대표 합숙할 때 천은숙 언니 후배들이 구경을 왔는데 그 틈에 남편이 있었어요. 8개월 만에 사귀자고 하더라고요. 6년 연애했는데 저는 농구하고 남편은 군복무랑 유학하느라 남들 6개월 만난 만큼도 못 봤어요.”

선수 전주원

-선수 시절에 세운 기록들이 많습니다. 2000시드니올림픽 쿠바전에서 올림픽 농구 사상 첫 트리플더블(10득점·10리바운드·11어시스트)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정말 운이 좋았어요. 정은순 언니나 양정옥·박정은 선수 슛이 워낙 좋아서 패스하는 대로 다 넣어줬거든요. 경기 때는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전해 듣고 기분이 엄청 좋았어요.”

-여자농구의 시드니올림픽 4위는 동구권 국가들이 빠졌던 1984로스앤젤레스올림픽 은메달보다 더 큰 업적으로 평가받기도 하잖아요.

“사실 시드니에 갈 때는 8강만 해도 기적이라고 했어요. 한국에 지면 다 어이없어 했어요. 쿠바 선수들은 대성통곡하고, 러시아 선수들은 경기 시간(오전 9시) 핑계대고, 프랑스 선수들은 인터뷰조차 거부하고…. 하지만 미국전에서 우리가 출전국 중 가장 근소한 점수차로 지고 나서부터는 ‘우연’ 아닌 ‘실력’을 인정해주기 시작했어요.”

-뿌듯한 경험이네요.

“그때 멤버들은 모두 시드니올림픽을 인생 최고의 순간으로 꼽아요. 브라질과의 3·4위전에서 연장까지 갔는데, 베스트5 중 3명이 퇴장 당했어요. 저도 연장 1∼2분 만에 빠졌고요. 하지만 자신있게 ‘잘 했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선일여고 27연승의 주역이셨죠. 처음부터 농구를 잘 했나요.

“아뇨. 평범했어요. 하지만 초등학교 5학년 때 운동을 잘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었어요. 소년체전 엔트리가 12명인데, 전 못 갔어요. 친구들이 유니폼도 받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까 어린 마음에 많이 부러웠어요. 다행히 중학교 때 키가 쑥쑥 크면서 실력도 좋아졌고, 고 3 가드 언니가 아파서 고 1때부터 제가 대신 뛰게 됐어요. 운이 좋았나 봐요.”

-무릎은 농구 선수의 생명이라는데, 부상을 오래 이겨내셨어요.

“양쪽 무릎 십자인대 수술을 한 번씩 하고 각각 6개월과 5개월 반 만에 복귀했어요. 반월판 연골을 제거한 후에는 3주 만에 경기를 뛰었고요. 무릎 아픈 선수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밤에 아파서 잠 못자고 진통제 먹는 건 기본이고 얼음도 달고 살아요. 부상을 ‘친구’라고 생각하는 수밖에 없어요.”

-고통이 심했겠네요.

“제가 아무리 나이 들고 아파도 코트에 나갔을 때는 그냥 ‘선수’잖아요. 젊을 때 경기 망치면 컨디션이 안 좋다고 하지만, 나이 들어 그러면 ‘늙었다, 은퇴해라’ 소리가 바로 나와요. 그래서 더 재활에 신경 썼어요.”

-농구의 무엇이 그렇게 좋았나요.

“처음에는 운동 좋아하시는 아버지 권유로 시작했어요. 하지만 다행히 제 모교들이 전국 최강이었거든요. 계속 이기고 우승하고 청소년 대표까지 뽑히니 언젠가부터 신나더라고요. 그러다 졸업 후 신생팀(당시 현대산업개발)에 입단하면서 상황이 달라졌죠.”

-어떻게 달라졌나요.

“늘 졌어요. 처음에는 너무 서러워서 질 때마다 울었어요. 아무리 올라가도 1등은 못하고 2위나 3위. 내가 죽을 힘을 다해도 우승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어요. 그래서 신한은행 시절이 그 고생에 대한 ‘보답’이었구나 싶어요. 은퇴했다가 복귀한 후에는 통합 5연패까지 해봤으니까요.”

엄마 전주원

-임신 중에 2003아시아여자농구선수권을 뛴 얘기는 유명하죠.

“전혀 모르고 센다이(대회 장소)에 갔는데 임신인 듯한 느낌이 왔어요. 하지만 남편한테 ‘어차피 경기는 뛰어야 한다. 결승이 끝날 때까지 차라리 모르고 싶다’고 했어요. 2004아테네올림픽 티켓이 걸린 대회였거든요. 남편도 ‘그래라’ 하더군요. 대회 끝나고 테스트했더니 역시 임신이었어요. 한 마디로 미친 엄마죠.”

-딸 수빈(8)이도 그 사실을 아나요?

“아직 어려서 몰라요. 그냥 ‘넌 강한 사람이 될 거다’라고 말해줬어요. 그런 상황에서도 뱃속에서 살아남은 우리 아기잖아요.”

-예기치 못한 임신이라 고민도 컸겠네요.

“수빈이를 서른셋 1월에 가졌어요. 당연히 은퇴를 결정했죠. 하지만 제가 경기 뛰는 걸 정말 좋아하거든요. 복귀 후 1∼2년만 더 뛴다는 결심이 그래서 6년까지 간 것 같아요.”

-수빈이는 농구하는 엄마를 좋아하나요.

“어릴 때는 운동하러 간다고 하면 만날 울었어요. 그런데 초등학생이 되니 친구들이 ‘너희 엄마 TV에 나온다’고 알아보는 게 좋은가 봐요. 사실 우리 수빈이가 어릴 때부터 엄마 없이 자라서 그런지 철이 빨리 들었어요. 지금은 제가 집에서 나올 때 눈에 눈물만 그렁그렁하고 끝까지 안 울어요. 저 나가면 그때 운대요. 엄마가 속상할까봐 배려하는 착한 딸이에요.”

코치 전주원

-코치 첫 시즌에 벌써 정규리그 우승 확정이네요. 기쁨이 남다르시겠어요.

“선수들에게 고마울 뿐이에요. 아직 완전 초보 코치라서 모르는 부분이나 어려운 부분이 많은데, 선수들이 이렇게 잘해주니 마음의 부담을 덜었죠.”

-선수들이 정신적으로 많이 의지한다고 들었어요. 어떤 조언을 해주나요.

“어린 선수들에게는 자신감을 북돋아 주는 게 최고예요. 아직은 은퇴한지 얼마 안돼서 그런지 선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거든요. 지금은 힘들지만 앞으로 열심히 하면 시야가 넓어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확실히 몸은 편한데 머리는 더 아픈 것 같아요.”

-임달식 감독에게 많은 도움을 받겠네요.

“아직 서툰 게 많은데 감독님이 세세하게 조언을 많이 해주시고 가르쳐 주세요. 감독님을 보면 농구 기술만 잘 가르친다고 좋은 감독이 되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달아요. 여러 방면으로 신경 쓸 게 굉장히 많거든요. 훈련장에서는 무서운 분으로 소문났지만 코트 밖에서는 최대한 편하게 대해 주세요. 코치들에게도 일을 적절히 분담시켜 주려고 하시고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선수·코치·여자·엄마도 아닌 ‘사람’ 전주원은 어떤 모습이길 바라나요.

“수빈이를 낳고 나서 늘 생각했어요.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겠다고. 크게 무엇이 되겠다는 포부보다는 그저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집에서는 가족에게, 그리고 직장에서는 동료들에게 필요한 사람. 사실 일하는 엄마로 살기 위해서는 ‘전주원’이라는 사람을 놓아 버려야 하거든요. 가족의 희생도 필요하고요. 주위 분들께 늘 감사해요.”

▲생년월일=1972년 11월 15일
▲키·몸무게=176cm·67kg
▲출신교=명일초∼선일여중∼선일여고
▲실업선수 경력=1991∼2003년 현대건설
▲프로선수 경력=2004∼2011년 신한은행(2004년 결혼 후 일시 은퇴·2005년 현역 복귀)
▲지도자 경력=2011년 신한은행 코치
▲수상 경력=1991년 농구대잔치 신인상, WKBL 7회 연속 어시스트상 수상, 2005년 챔피언 결정전 MVP, 2007년 정규리그 MVP, 2009년 챔피언 결정전 MVP


안산 |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트위터 @goodgo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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