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채태인(30)은 지난해 모진 풍파를 겪었다. 각종 부상 탓에 경기장이 아니라 병원을 오가는데 시간을 더 빼앗겼다. 결국 53경기 출장에 그쳤고, 성적도 타율 0.220에 5홈런 28타점으로 곤두박질쳤다. 게다가 시즌 뒤에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똑같이 왼손이고, 포지션까지 1루수로 겹치는 대선배 이승엽의 전격 복귀였다.
채태인은 지난해 말 자신의 처지를 “올해는 딱 1분만 즐거웠다”는 말로 압축했다. 4월 2일 KIA와의 개막전에서 0-2로 뒤진 8회초 만루홈런을 터뜨렸을 때를 떠올린 것이다. KIA 에이스 윤석민에게 7회까지 5안타 무득점으로 꽁꽁 눌려있던 삼성은 이 한방으로 짜릿한 6-2 역전승을 거뒀다.
엎친 데 덮친 듯한 주변 상황. 상심에 잠겨있던 채태인을 누구도 선뜻 위로할 수 없었다. 동료들 또한 채태인의 입지가 크게 약화되리라 예측한 것이다. 하지만 사령탑 류중일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몸만 아프지 않다면 3할에 20홈런을 기대할 수 있는 채태인이다. 올 1월 훈련을 시작하면서 류 감독은 “이승엽과 채태인을 1루수와 지명타자로 번갈아 쓰겠다”고 밝혔다. 또 “이승엽이 3번, 최형우가 4번, 채태인이 5번”이라며 변함없는 신뢰의 신호를 보냈다.
마음이 통했을까. 괌과 오키나와로 이어진 스프링캠프를 통해 채태인은 류 감독의 기대에 걸맞은 훈련 성과와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6일까지 삼성이 오키나와에서 치른 12차례의 평가전 중 11게임에 출장한 채태인은 31타수 9안타 1홈런 6타점으로 제몫을 다하고 있다. 반면 스윙을 교정 중인 이승엽은 아직 제 컨디션이 아닌 듯 4게임에서 11타수 1안타에 그치고 있다. 이승엽이 부진해도 채태인이 뒤를 받치는 모양새다. 채태인은 “승엽이 형이 훈련 때면 늘 솔선수범해서 나 또한 긴장감을 잃지 않고 집중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