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대결을 제안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도전 과제 발굴에 어려움을 겪던 터라 무척이나 반가웠다. 더구나 70대 할머니와의 대결이라니…. 배드민턴은 동네 뒷산에서 쳐본 게 전부였지만 왠지 모를 자신감이 넘쳤다.
제12회 파마넥스배 한국어머니배드민턴대회가 한창인 11일 경기 수원시 장안구 송죽동 만석배드민턴전용경기장에서 대결 상대인 이난수 씨(76)와 처음 대면했다. 대결을 주선한 강영신 한국여성스포츠회 사무총장(62)은 말했다. “젊은 양반, 우리 이 선생님을 잘 부탁해요.” ○ 배드민턴은 선구안이다
당연히 이기리라 생각한 탓에 털끝만큼의 긴장감도 없이 나선 코트. 이 씨의 서비스를 호기롭게 기다렸다. 그러나 그의 라켓을 떠난 셔틀콕은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날아왔다. 기자는 라켓을 휘둘러 보지도 못한 채 멍하게 서 있었다. 마치 야구에서 스탠딩 삼진을 당한 타자처럼. 빠르게 기자의 등 뒤까지 날아간 롱 서비스였다.
당황한 기자의 어깨는 급속하게 굳었다. 롱 서비스에 대항하기 위해 전보다 네트에서 멀리 떨어져 두 번째 서비스를 기다렸다. 그랬더니 이 씨의 서비스는 네트를 살짝 넘겨 기자의 앞쪽으로 떨어졌다. 쇼트 서비스였다.
두 번 연속 서서 당한 뒤 절감했다. 야구에서처럼 배드민턴에서도 선구안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롱 서비스가 직구라면 쇼트 서비스는 날카롭게 떨어지는 변화구와도 같았다. 직구를 노리면 변화구로 타이밍을 빼앗는 베테랑 투수처럼 이 씨는 서비스로 기자를 농락했다. 스코어는 0-7까지 벌어졌다.
여덟 번 만에 서비스를 받아냈지만 이 씨는 작심한 듯 드롭샷(역회전을 줘서 네트 바로 앞에 떨어지는 샷)을 시도했다. 기자는 온몸을 날려 라켓을 휘둘렀지만 셔틀콕은 이미 바닥에 떨어진 뒤였다. 경기 내내 서비스에 고전하다 5-21로 대패하고 말았다. 승리한 뒤 체육관을 가득 메운 아줌마 부대에게 이용대처럼 멋진 윙크 세리머니를 선사하려던 계획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 배드민턴은 어머니의 활력소
이 씨는 초등학교 시절 육상 100m 선수를 지냈다. 1994년부터 18년간 전국 아마추어 배드민턴대회에서 이름을 날린 고수였다. 국민생활체육회에 따르면 배드민턴 동호인은 16만 명에 이른다.
“매일 자고 일어나면 무릎부터 확인해요. 그러곤 하늘에 말하지요. ‘감사합니다, 오늘도 배드민턴 칠 수 있게 해주셔서’라고….”
이 씨는 매일 4시간 이상 배드민턴을 한다. 그는 “배드민턴을 하다 보니 골다공증과 같은 노인질환이 전혀 없고 체력과 심폐기능도 좋아진다”고 했다.
경기 후 악수를 하러 내민 이 씨의 손은 70대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고왔다. 무엇보다 운동을 통해 행복하게 인생을 즐기는 모습이 무척 아름답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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