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올림푸스타워의 한 전시회장. 해태(현 KIA)와 삼성 감독 시절 한국시리즈 우승 10회를 이끈 김응룡 전 삼성 프로야구단 사장(71)은 그림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첫째 딸인 미술가 김혜성 평택대 교수(영상디자인과)의 개인전을 찾은 것이다. 작품들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그의 얼굴에서 따뜻한 부정(父情)이 느껴졌다.
김 전 사장은 지금 ‘행복한’ 실업자다. 2010년 12월 사장직에서 물러난 뒤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야구에 대한 애정이 깊다. “올해 시즌이 시작되면 조용히 야구장을 찾아 경기를 즐길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국내에 돌아온 박찬호 김태균(이상 한화) 이승엽(삼성) 등 해외파들에 대해 “잘할 것 같으냐”고 기자에게 반문했다. 김 전 사장은 국내 야구가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 있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자신의 제자인 삼성 류중일, KIA 선동열 감독의 맞대결에 대해선 “누구 하나 편들 수 없다. 모두 인정받는 지도자가 됐으니 좋은 경기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 전 사장은 요즘도 ‘감독님’으로 불리는 게 좋다고 했다. 그라운드에서 지휘할 때가 힘들면서도 행복했다는 얘기다. “더그아웃에 앉아 있으면 속이 타지만 내색을 안 했다. 사장이 된 뒤에도 5, 6회만 되면 야구를 더 볼 수 없어 밖으로 뛰쳐나가기도 했다. 경기에 패했을 때는 혼자 산에 올라 고함을 치고 욕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래도 이겼을 때의 짜릿함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그는 지도자로 화려한 시절을 보냈지만 ‘명장’보다 ‘운 좋은 감독’이란 소리를 들어 아쉬웠다고 했다. “한국시리즈 우승을 4번 한 뒤에야 언론에서 감독상을 주더라. 요즘은 ‘야신’ ‘야왕’ ‘야통’이라는 말이 돌던데…. 나는 ‘맹장’ 정도 아닐까?”
김 전 사장에게 김성근 감독(70)이 아직도 현역 지도자로 독립야구단 고양을 이끄는 게 부럽지 않냐고 물었다. 그는 “나이 일흔이 넘었는데 가능할까”라며 “그래도 불러준다면 지금이라도 (감독을) 하고 싶다”며 웃었다. 이어 “프로야구의 발전을 위해선 제10구단이 빨리 창단돼야 한다”고 했다. 8개 구단이 제9구단 NC의 창단을 허락한 만큼 10구단 체제로 가야 쉬는 팀 없이 시즌을 치를 수 있다는 거였다.
야구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그의 얼굴은 어느새 유니폼을 입은 김응룡이 돼 있었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윤승옥 채널A 기자 touch @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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