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복서-4>시합 일주일전 술마셔도 결과는 KO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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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18일 1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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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영광의 복서-4> 시합 일주일전 술마셔도 결과는 KO승
술이 좋고 사람이 좋았다. 여기저기서 술자리 약속이 잡혔고 그 유혹은 거절하기 힘들었다. 한번 자리에 앉으면 소주 3~4병은 기본이고 많게는 12병씩을 마셨다. 그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운동은 언제 하느냐”고 힐책했다. 그 때마다 그는 보란듯이 상대를 KO로 눕히고 링을 내려왔다. 전 WBA 슈퍼미들급 챔피언 백인철의 얘기다.

26전 26승 26KO의 ‘KO머신’
권투인들은 한국 권투계에서 최고의 재능을 가졌던 선수 중 한 명으로 백인철을 꼽는다. 데뷔이래 26연승 26KO. 당시 한국 복싱에서 흔하지 않았던 중량급 하드펀처의 등장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남들보다는 제가 조금 더 빼어났나봐요. 운도 조금 따랐고요. 동양에서는 상대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연승기록이 늘어날수록 백인철의 자만심도 커졌다. 경기를 준비하는 시간은 점점 짧아졌다. 백인철이 최고의 몸상태로 링에 오르기 위해서는 적어도 한 달 반의 훈련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경기 일주일 전에 술을 마시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그 빈도 수는 점점 늘어났다.

“술을 너무 좋아했어요. 계속 이기니까 자만한거죠. 술 마시고 바로 링에 올라갔다는 건 낭설이고, 일주일전까지 먹은 적은 몇 번 있습니다.”

첫 패배에 돌아온 평가는 ‘우물안 개구리’
‘동양의 왕자’ 백인철이 세계무대에서도 통할까? 1983년 5월 19일 백인철은 미국 원정에서 션 매니언을 상대로 첫 시험대에 올랐다. 그러나 결과는 판정패. 언론은 ‘우물안 개구리’라는 표현을 써가며 그를 폄하했고 국민들의 시선은 싸늘했다. 백인철은 억울했다.

“그 당시 경기 10일 전에 상대가 바뀌어서 대비할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이전까지 상대했던 선수들에 비해 그 선수가 잘하기도 했지만 경기 내용을 보면 지는 시합이 아니었어요. 국내에서 했으면 제 손이 올라갈 수도 있는 시합이었습니다.”

독을 품은 백인철은 다시 15연승을 거두고 오명을 씻을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WBA 라이트 미들급 챔피언 줄리안 잭슨에게 도전한 것. 그러나 이번에도 세계의 벽을 넘지 못하고 KO패하고 만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KO패였다.

“대단한 선수였어요. 제가 선수시절 3패를 당했는데 2명은 정말 운동 열심히하면 이길 수 있겠단 생각이 들지만 잭슨은 다시해도 질 것 같아요. 그렇게 훌륭한 선수예요”

박종팔과의 라이벌전 “가장 값진 승리”
한번 세계 타이틀전을 하기 위해서 4~5년 공을 들여야했던 시절, 잭슨에게 당한 패배는 뼈아팠다. 다시 일어나야 될 계기가 필요했다. 때마침 잡힌 경기가 당시 중량급 최강자로 평가받던 전 WBA 슈퍼미들급챔피언 박종팔과의 라이벌전이었다. 박종팔의 연승, 연속KO 기록을 갈아치웠으면서도 변변한 세계 타이틀이 없었던 백인철로서는 박종팔의 그림자를 떨쳐버릴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KO승으로 자신이 한국 복싱 중량급의 새 간판임을 알렸다.

백인철은 여세를 몰아 WBA 슈퍼미들급 챔피언 오벨메이아스에게 도전했다. 오벨메이아스는 박종팔을 두 번이나 꺾었던 강자.백인철은 오벨메이아스에게 TKO 승을 거두며 꿈에 그리던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얻었다. 그러나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3차 방어전에서 도전자 크리스토퍼 티오조에게 패하며 타이틀을 잃고만 것.

“대전료 배분 문제로 매니저랑 문제가 생겨 운동을 하기 싫더군요. 열 흘 전에야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이미 시합전에 지고말았죠. 지금은 그 때가 가장 후회됩니다.”

이 경기에서 이겼다면 대전료 150만 달러를 받으며 ‘전설’ 토마스 헌즈와 대결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만약 헌즈와의 대결이 성사됐다면 어떻게 됐을까.

“매니저가 가계약까지 한 걸로 알고 있어요. 만약에 헌즈랑 했다면 이기든 지든 5라운드만 한다고 생각하고 경기할겁니다. 모든 것을 5라운드 안에 다 쏟아부으면 헌즈가 이길지 내가 이길지 몰라요. 헌즈는 턱이 약하기 때문에 한 대 걸치면 가거든요. 그때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복싱은 인생의 축소판”
백인철은 은퇴 후 잦은 음주인해 간경화가 생겨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었다. 선수시절 모았던 큰 돈을 연이은 사업실패로 탕진한 상태에서 닥친 위기였다. 이 때 권투인들이 십시일반으로 모금해 수술비를 대줬다.

“복싱은 내 인생의 축소판 같아요. 선수 시절에도 노력한 것에 비해서는 성적이 잘 나왔는데, 인생에서도 노력한 것에 비해서 사람들을 잘 만났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도움도 받았죠. 복싱도, 인생도 최선을 다하지는 않았지만 만족합니다. 항상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

동아닷컴 동영상뉴스팀 I 백완종 기자 100p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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