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장의 아이디어는 현실이 됐다. 7월 20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리는 한일 프로야구 레전드 매치는 야구 원로 3명의 교감 끝에 성사됐다. 일본 프로야구 최다안타기록(3085개) 보유자인 재일교포 장훈 씨(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72)와 SK 시절 한국시리즈 3회 우승을 이끈 독립리그 고양의 김성근 감독(70), 2009년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준우승을 지휘한 김인식 한국야구위원회(KBO) 기술위원장(67)이 그 주인공이다.
이번 레전드 매치는 명구회 회원인 장 씨의 노력이 컸다. 명구회는 1978년 일본 프로야구에서 통산 400승을 기록한 재일교포 가네다 마사이치(金田正一·한국명 김경홍)를 중심으로 설립됐다. 가입 조건도 투수는 200승이나 250세이브 이상, 타자는 2000안타 이상인 선수만 회원이 될 수 있다. 장 씨는 이번 이벤트를 성사시키기 위해 은퇴한 스타들을 일일이 만나 설득했다. 사단법인이 된 지 3년이 된 일구회는 그런 명구회를 모델로 삼고 있다.
장 씨와 김 감독은 모두 일본에서 나고 자랐다. 장 씨는 1958년, 김 감독은 이듬해 재일교포 야구단 대표로 한국에서 열린 전국고교야구대회에 참가했다. 장 씨는 오사카 나니와 상고 졸업 직후 일본 프로야구 도에이에 입단해 1981년 롯데에서 은퇴할 때까지 통산 타율 0.319에 3085안타를 날리며 ‘안타 제조기’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지도자 제안을 수차례 받았지만 불같은 내 성격을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 포기했다”고 말했다. 반면 김 감독은 1960년 영구 귀국해 국가대표와 기업은행 투수로 활약했지만 어깨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접었다. 그 후 아마추어와 프로 지도자로 ‘야신(야구의 신)’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둘은 한국과 일본에서 각자의 길을 걸었지만 틈틈이 연락을 주고받았다. 레전드 매치와 관련해서도 경기 장소와 선수 선발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김 위원장은 1982년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할 당시 재일교포 선수를 추천하는 등 도움을 준 장 씨와 처음 인연을 맺은 뒤 호형호제하고 있다. “장 선배는 일본에서 선수로 뛰면서도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이 강했다. 김 감독 역시 야구 열정은 젊은이 못지않게 뜨겁다. 둘은 요즘도 한국과 일본 야구의 가교 역할을 하길 원한다.”
이들 야구 원로는 21일 레전드 매치 기자회견 직후 조용히 다시 만났다. 장 씨는 “한국 고교야구팀이 53개뿐이라는 데 놀랐다. 일본은 4000개가 넘는다. 고교야구를 살려야 한국 프로야구도 산다”고 조언했다. 한국 타자들이 일본에서 고전한 이유에 대해선 “몸쪽 공에 약해 집중 공략당한다. 일본에서 살아남으려면 더 치열하게 연습해야 한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고교야구팀을 창단하는 학교를 KBO 차원에서 적극 지원할 것이다. 여기에 프로야구 제10구단까지 창단되면 한국 야구의 르네상스가 찾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노장의 야구 이야기는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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