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km 강속구-윤석민급 슬라이더, 올 시즌 불펜 변신… 구위도 대변신
홀드 11개… LG 뒷문 지킴이로
2000년 겨울의 어느 날. 서울 송파구 잠신중학교에선 네덜란드 올림픽대표 출신 왼손 투수 유리안 로베주의 공개 트라이아웃이 열렸다. 그를 보기 위해 8개 구단 스카우트가 총출동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로베주는 들러리였다. 얼굴에 솜털이 가득한 한 중학생 투수가 스카우트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이 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그는 쌀쌀한 날씨에서도 최고 시속 134km의 직구를 던져 스카우트들을 놀라게 했다. 로베주의 최고 구속(131km)보다 더 빨랐다. 그는 유승안 경찰청 감독의 아들 유원상(26·LG)이었다.
이듬해 메이저리그로 연수를 간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 간 유원상은 고등학교 때 이미 시속 150km의 빠른 공을 던졌다. 2년간의 미국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200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5억5000만 원이라는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한화에 입단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성장은 더뎠다. 공은 빨랐지만 투구가 들쭉날쭉했다. 어떤 날은 누구도 치기 힘든 공을 던지다가도 다음 등판에선 초반에 무너지곤 했다. 타고난 재능을 살리지 못한 채 평범한 투수가 됐다. 한화는 지난해 시즌 도중 그를 LG로 트레이드했다.
그런데 이 트레이드가 그의 천재성을 새로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올해 유원상은 LG는 물론이고 8개 구단 오른손 투수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구위를 뽐내고 있다.
그는 5일 현재 팀 내에서 가장 많은 28경기에 등판해 1승 1패 2세이브를 거뒀다. 평균자책은 1.14에 불과하다. 홀드도 11개나 기록해 박희수(SK·15개)에 이어 이 부문 2위다.
유원상의 올해 투구는 전국구 에이스인 KIA 윤석민과 닮았다. 유원상은 불펜 투수고 윤석민은 선발 투수라는 것 외에 둘은 모두 시속 150km의 강속구를 던진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140km가 넘는 고속 슬라이더를 던지는 몇 안 되는 투수기도 하다. 올해 유원상은 최고 143km, 윤석민은 144km의 슬라이더를 던졌다.
유원상은 “지난해까지 선발로 주로 나서면서 완급 조절에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볼펜으로 보직을 바꾼 올해는 모든 공을 전력으로 던지고 있다. 위기 상황에 등판해도 공격적인 피칭을 할 정도로 자신감이 붙었다”고 말했다.
지난해까지의 LG는 허약한 불펜 때문에 뼈아픈 역전패를 자주 당했다. 하지만 올해 LG는 셋업맨 유원상-마무리 봉중근으로 이어지는 막강 뒷문을 갖췄다. 깨질 듯하면서도 깨지지 않는 LG의 ‘5할 본능’의 핵심은 단연 유원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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