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부정투구 논란)이 불거진 지 이틀 만에 오른 마운드. 13일 사직 두산전에 선발 등판한 롯데 이용훈(35)은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려고 했다. 야구공에다 대고 간절함을 표시하던 평소의 엄숙한 자세와 달리 싱글벙글 웃으며 1회를 준비했다. 역설적으로 애써 태연함을 표시하는 일거수일투족 자체가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드러낸다.
1회초 초구를 던지기 전, 이민호 구심은 마운드에 올라 ‘공을 입에 무는 행위를 하지 말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이에 이용훈은 ‘알고 있다’는 의미의 미소를 지었다. “오해를 하시는 분들이 있는 이상, 안 하겠다”고 말한 그대로 이용훈은 그 자신의 징크스를 포기했다. 단 한번도 공을 입 근처에 가까이 대지 않았다.
섬세한 성격의 이용훈이 의식적으로 해왔던 습관을 버리려다가 마인드 밸런스가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를 깨고, 1회초를 삼자범퇴로 막아냈다. 특히 두산 3번 김현수를 3구 삼진으로 돌려세운 장면은 압권이었다. 이후에도 이용훈은 최고 구속 144km의 직구와 포크볼을 적절히 섞어 던지면서 5.2이닝 2안타 1사구 3탈삼진 무실점의 쾌투를 펼쳤다. 롯데에선 “만약 오늘 이용훈이 초반에 무너지면 후유증이 오래갈 것”이라고 걱정했는데 ‘공을 물어뜯지 않아도 잘 던질 수 있다’는 사실을 실력으로 보여줬다는 데 의미가 컸다.
그러나 롯데는 7회초 2사 만루서 두산 이성열의 평범한 플라이를 내외야 수비진이 우왕좌왕하다 놓치는 바람에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그나마 이용훈의 건재를 확인한 것은 큰 소득이었다. 이용훈으로서도 아쉽게 선발승은 놓쳤을지 몰라도, 자신의 투구에 대한 믿음만은 확인시켜준 의미 있는 등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