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선배로부터 야구 배트를 선물로 받았다. 야구를 보는 사람이긴 하나 야구를 하는 사람은 아닌지라 야구화며 글러브며 장갑이며 온갖 장비에는 담 쌓고 살아온 나, 좋다고 폴짝 뛰기는 하였으나 한두 번 휘두르다 말고 가만 내려놓는 걸 보니 진심으로 기쁜 것만은 아닌 듯했다. 명품 가방이었다면 또 모를까, 도깨비 방망이도 아닌 그것을 어깨에 인 채 이 물건을 어디에 놓나 이 방 저 방 자리보전할 곳을 찾는데 눈에 띄는 자리라곤 펑퍼짐한 항아리뿐이었다. 우산들과 더불어 한데 방망이를 꽂았다. 참으로 묘한 건 날렵한 우산들 사이에 머쓱하게 낀 그것이 오며 가며 자꾸만 내 시선을 잡아끈다는 사실이었다. 정말이지 방망이는 손이 가요 손이 가, 사람의 손을 부르는 운명 속에 태어났구나.
사회인야구단의 4번타자를 도맡은 선배는 글을 쓰다 안 풀릴 때면 휘휘, 강의가 힘들거나 학생들이 온갖 스트레스를 줄 때도 휘휘, 집과 학교에 방망이를 갖다 놓고 자주 휘두른다고 했다. 어쩌다 생기는 가욋돈은 모두 방망이 사는 데 들여 수십 개가 넘는다나. 그럼에도 아직 제대로 된 홈런의 손맛을 보지 못했다는 그, 담장을 훌쩍 넘기는 그 포물선의 곡선을 꼭 한 번 그려보고 싶다는 마음에 오늘도 땀 흘리고 있을 그, 하물며 우리 같은 일반인들도 그러할진대 진짜배기 홈런타자들이 배트를 바라보는 심정이란 어떤 곡절일는지.
물론 모두의 힘이 보태져야 하겠지만 역사의 전환이라는 소용돌이의 시발은 꼭 한 사람으로 비롯된다고 할 때 이승엽, 그 이름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한국야구사의 유일무이한 홈런 신(神)으로 기록되지 않을까 한다. 현재까지 한일 통산 500홈런으로부터 세 개 모자란 기록 속의 그가 아니던가. 76년생으로 나와 동갑인 그, 내가 대학 새내기였을 때 그는 삼성 라이온즈의 새내기였으니 그 시작은 초심으로 다르지 않았을 터, 내가 이 직장 저 직업을 전전하는 와중에도 그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18년째 제가 휘두르는 배트와의 싸움에 몰두중이니, 장인(匠人)이 별스럽고 위인(偉人)이 별거이랴. 삶을 이렇게 살아내는 자가 있다면 충분히 갖다 바칠 칭송으로 마땅할 테지.
오늘도 타석에 들어서고 내일도 타석에 들어설 그다. 머리까지 바싹 깎고 나니 더욱이 비장해 보이는 그다.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투를 성대모사 했는지 타석에 든 그를 보니 알 것도 같다고 하면 오버일까? 비음 섞인 목소리도 아니고 사투리도 아닌, 그라는 그만의 날카롭고 형형한 눈빛의 존재감을 또 누구에게서 찾으려나.